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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승인 2007.03.15 0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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韓, 따낸 성과 … 美, 늘 해오던 일
김 병 우 <논설위원·충북도교육위원>

한 평범한 영국 가정의 식탁. 식단에 오른 식재료들은 무척 고단하다. 수천km를 이송되는 동안 '노독'에 절은 탓이다. 캘리포니아산 딸기 8772, 과테말라산 브로콜리 8780, 뉴질랜드산 블루베리 1만8835, 오스트레일리아산 쇠고기 2만1462, 타이산 강낭콩 9532. 그 먼 거리를 실려 오는 동안 시들지 않도록 온갖 방법이 쓰였다. 바나나와 토마토는 덜 익은 채로 따서 매장 근처 창고에서 에틸렌가스로 숙성시킨 것인데, 기계수확과 인공숙성에 잘 견디는 이 토마토는 3층에서 떨어뜨려도 고무공처럼 튀어 오른다. 그 외에도 코팅기술로 3년 넘게 신선도가 유지되는 샐러드, 산소를 빼고 이산화탄소 농도를 높여 저장하는 사과, 질소가스로 갈변현상을 막는 채소류.

송어가 뛰어노는 노르웨이의 한 계곡, 휴가를 즐기러 간 농부가 인근 식당에서 시킨 전통 '송어감자요리'의 재료는 냉동 수입된 칠레산 양식 송어다.

브라이언 핼웨일의 'Eat Here'에 그려진 '먹을거리 세계화'의 풍경들이다.

먼 데 이야기를 들 것도 없다. 지난 10수년 세계화를 지상과제로 삼아온 우리네 식탁 사정도 별반 다르지 않다. 지난겨울, 수 시간을 달려 찾아간 서해안 횟집에서 주문한 활어가 중국산이란 말을 듣고 뒷맛이 씁쓸했던 기억이 있다.

농촌경제연구원의 보고에 따르면 2005년 국내 수입시장 점유율이 90%가 넘는 중국산 농산물이 파, 들깨, 마늘, 배추, 고추 등 10개 품목이나 된다. 이것들은 몇년 안에 국내 소비량의 절반 이상을 점령할 것이라고 한다. 돼지고기 소비량의 4분의1 이상이 수입육임은 이미 주지의 사실이고, 특히 미국산 냉장 돼지고기 수입은 지난 2003년 이후 140∼150배나 폭증했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눈길을 끄는 것이 '로컬 푸드(Local Food)' 운동이다. 우리말로 '향토식품'찾기 운동이라 풀이할 만한 이것은, 실은 우리에게 그리 낯선 운동도 아니다. 흙에서 나서 흙으로 돌아갈 사람의 몸, 그 몸을 살리는 먹을거리도 '삼백리 안'에서 나는 것이라야 한다는 '신토불이'.

그것처럼 로컬 푸드도 장거리 운송을 거치지 않은 지역농산물을 말한다. 물리적 거리(50이내)뿐만 아니라 생산자와 소비자 간의 직거래가 요건이다. 저장도 거쳐선 안 되고 반드시 제철에 난 것이어야 한다.

이 운동은 기업농의 폐해가 극심했던 선진국들에서 생겨났다. 농업이 기계화되고 생산성이 높아질수록 역설적인 피드백이 작동된 것이다. 이들 나라들은 이젠 텃밭 가꾸기와 직판장 개설, 집단급식체계 구축 등 '먹을거리 시스템 로컬화'를 거국적으로 지원하고 있다. 일본의 '지산지소(地産地消)운동', 미국 구글 본사의 '카페 150' 등은 그런 차원의, 관민을 가리지 않은 실행 사례들이다.

우리나라에서는 학교급식 운동이 그 운동을 이끌고 있다, 충북에서도 지난 수년간 '학교급식운동본부'를 중심으로 우리 농산물을 학교급식 재료로 의무화하는 조례제정 운동을 벌여왔었다. 그러나 행정당국의 무관심과 의원들의 무신경 등 뜻밖의 돌부리에 걸려 안쓰러운 몸부림을 계속하고 있다.

그러던 중 웃어야할지 울어야할지, 엉뚱한 곳에서 돌파구가 생긴 모양이다. 한·미 FTA협상 막바지에서 '학교급식에서의 국내농산물 우선사용'을 선별유보(개방불가) 양허목록에 넣기로 했다는 것이다. 정부는 이를 실무선의 주고받기(스몰딜) 차원에서 '따낸' 성과라 하고 있으나, 미국에서는 이미 진작부터 시행해오던 일일 뿐이다.

어쨌거나, 한·미FTA를 핑계삼던 급식조례 반대론자들은 이제 그 비빌 언덕마저 없어졌으니 다시 무슨 어깃장을 놓을지는 두고 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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