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행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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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10.04 19: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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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하늘이 깊다. 파도 하나 없는 잔잔한 바다다. 배가 지나며 눈부시게 부서지는 포말들이 따라가듯 하늘에 하얀 금이 그어진다. 꼬리모양의 띠를 길게 늘어뜨려 놓는다. 그리고는 은빛을 내는 작은 비행물체가 내 시선으로부터 소리 없이 달아나고 있다.

이 실선은 처음에는 선명하더니 차츰 옆으로 굵게 변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흩어져 희미해진다. 어느새 흐려진 선은 끝에서부터 지워져 나간다. 비행기가 운항하며 만들어낸 구름. 비행운이다.

이 선을 올려다보고 있으려니 너무 단조롭다. 그어진 선위에 나도 선 하나를 그려본다. 다시 여러 개의 선을 그려 넣는다. 가로와 세로의 조합이 이루어진다. 때로는 직선으로, 또 곡선을 만들기도 한다. 이제 선이 아닌 새로운 면이 생겼다. 꽃으로 피어나기도 하고 나무로 우뚝 서기도 한다. 집이 들어차고 길이 생긴다. 그럴싸한 동양화가 완성된다.

동양화로 펼쳐진 선은 소묘로, 건축으로 이어진다. 이윽고 다리를 놓고 나에게로 닿는다. 그 선은 과거와 현재와의 시간을 잇는다. 이리저리 수많은 흔적이 남아있다. 사람들의 말 한마디에도 음과 양을 달리했을 테고 굵기도 달랐을 것이다. 때로는 직선으로 와 찌르고 가끔은 곡선의 부드러움으로 감싸주어 온 길이다.

어쩌다 날카로운 선이 아파 오래도록 남아 괴롭기도 했다. 넘지 못하여 아쉬운, 넘어서 후회하기도 했을 선도 있다. 삶에 있어 직선만 있다면 버텨내지 못했을 시간들이다. 쓴맛이 입안에 더 세게 남을 테지만 지금 나에게는 단맛이 밍근히 남아있다. 나를 버티게 한 것도 곡선의 힘이라는 증거다.

내 안에 선이 그어짐을 안 것은 사는 게 녹록지 않다는 것을 느낄 때부터였다. 살수록 더 어려워지는 나는 비례하여 늘어나는 선을 본다. 세파에 둥그러졌을 만도 하건만 왜 이리도 직선이 더 많은지. 이 많은 것을 다 기억해낼 수가 없다. 누가, 무슨 일로 긋고 갔는지. 지우개로 지워지다 만 잘린 부분도 있다. 나이를 먹으면서 작은 선들로 하여 앓는 날이 늘어난다. 이렇게 앓고 나면 나도 바다 속처럼 깊어질 수 있을까.

정작 남기고 간 사람은 남긴 줄을 모른다. 나도 그랬다. 우연한 기회에 지인으로부터 놀랄 말을 들었다. 내가 자신의 글을 파도가 없는 잔잔한 바다라고 표현했다고 한다. 내가 보아도 후벼 판 깊은 선이다. 내내 잊히지 않았다는 게 당연했다. 전혀 기억에도 없다. 살을 파고드는 올무가 되어 나를 죄어온다. 건방을 부린 후회와 자책으로 뒤늦은 사과를 했지만, 그녀에게서 금방 지워지지 않을 것임을 안다. 강하게 각인된 상처였을 테니까.

내가 까맣게 몰랐듯이 하늘에 뿜어지는 꼬리구름을 기장은 모른다. 앞만 보고 운항할 뿐 뒤는 돌아보지 않으니 알 리가 없다. 땅에서 위를 올려다보는 사람들만이 알고 있는 것이다. 숨을 죽이고 빛을 내며 가는 물체가 비행기임을 그어지는 금을 보고 아는 것이다.

어느 날, 고요한 심해에 남겨진 비행운. 긴 시간이 흘렀어도 지워지지 않는 아련한 흔적은 누가 긋고 간 획이었을까. 자꾸만 사라져가는 비행기를 따라 먼 하늘을 쫓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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