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정 3
법정 3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10.03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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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내가 길상사, 아니, 대원각에 간 것은 김영삼 대통령 후보 시절이었다. 그를 취재하기 위해 외국손님이 왔는데, 친구가 나를 추천해서 통역을 하게 된 것이다. 일단 저녁부터 먹자고 했다. 저녁 자리가 바로 지금은 길상사가 된 대원각이었다.

말로만 듣던 서울의 가장 유명한 요정이라니 가볼 만했다. 성북동의 고급 주택가라고는 하지만 계곡 하나를 차지하고 있는 대원각이었다. 그 골짜기를 차도 없는데 어떻게 갔나 생각해보니, 시내에서 만나 그쪽에서 대절한 승용차로 간 것 같다. 내가 그 위치를 잘 알 때도 아니니 말이다. 삼청 터널을 지나니 새로운 서울이 펼쳐졌던 것이 떠오른다.

요정은 놀라웠다. 계곡을 따라 독채로 집들이 지어져 있는데, 서로 방해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현관을 열고 들어가니 두 칸짜리였다. 한 칸에는 손님들이 밥을 먹을 수 있도록 되어 있었고, 음식은 시간에 맞춰 잘 차려져 있었다.

한참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한복 입은 아가씨가 들어오더니 반주(飯酒) 같은 반주(伴奏)를 뜯어주었다. 그래, 가야금은 바이올린처럼 켜는 것도, 피아노처럼 때리는 것도 아니었다. 그러니까 한 칸은 밥 먹는 데, 다른 한 칸은 가락을 듣는 데로 나뉘어 있었다. 한 방이지만 두 칸으로 제대로 구분되어 있어, 매우 독립적인, 상당한 거리감이 있는, 그래서 마치 공연과 같은 느낌이 나는 상황이었다.

어쩌니저쩌니 무슨 말을 했는지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다만 우리는 말이 많았고, 연주자는 다소곳했고(거의 눈도 안 맞추는 듯했다), 분위기는 도심과 멀지 않은 곳에서 계곡 그것도 한옥 독채에서 논다고 생각하면 짐작이 되리라. 젊은 나이였으니 나중에 술 먹으러 와야겠다는 생각을 했을 만도 한데, 돈 버는 직업이 아니라서 언감생심 꿈도 꾸지 않았던 것 같다. 가격도 물어보지 않았으니.

대원각 여주인께서 그곳을 법정스님께 내놓았다. 사회적으로 큰 반향이 있었다. 술집이 절이 된다? 생각만 해도 기묘한 일이었다. 시주(施主)의 정신세계도 호기심의 대상이 되었고, 법정의 운영도 세간의 관심이었다. 죽기 전에 공수거(空手去)의 참다움을 보여주는 그 여인은 어떤 생각으로 세상을 살았는지, 혼자 살기 좋아하는 법정이 시내 복판의 절을 어떤 식으로 이끌고 나갈 것인지 나도 궁금했다.

법정은 그곳에서 `맑고 향기롭게'운동을 조용하게 이끌었다. 천주교에서 김수환 추기경이 동그라미에 십자가를 그어놓고는 빵을 나누어 먹자는 뜻에서, 그리고 모든 것이 내 탓이라는 `내 탓이오'(MEA CULPA) 운동을 벌인 것과 견줘진다. 사실 둘은 왕래가 있었다. 추기경이 방문하니, 스님도 명동성당에 찾아가고.

그런 왕래의 결과인지 길상사에 가면 꼭 보아야 할 것이 있다. 관음보살상인데, 이분이 마치 성모 마리아의 모양새이기 때문이다. 크지 않은 석상인데도 특이한 모습 때문에 눈에 확 띈다. 알고 보니 마리아상을 제작하는 분이 보살상을 만들었다 한다. 보살마리아, 아니, 마리아보살이다. 원어로는 `마리아 보디사트바'(Maria Bodhisattva)라 해야겠다.

교과서에 나오는 시 가운데 `언제나 문 닫으면 산속'이라는 구절이 늘 마음에 걸렸다. 난 문 닫아도 마음은 저잣거리로 향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 구절에 딱 걸맞은 데가 길상사였다. 노랫소리 나오던 독채들은 이제 스님이 하나씩 들어가서 공부한다. 그래도 난 아직 그곳에 가면 계곡소리보다는 자꾸 가야금 소리가 들린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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