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한 생존
독한 생존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10.0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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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계절 바뀌는 틈새에 세 번째다. 하루가 지나자 물린 자국을 중심으로 벌겋게 부어올랐다. 이번엔 실체를 못 봤으니 무언지 알 수 없다.

처음엔 말벌이었다. 키우는 것도 아닌데 처마 밑에 말벌 집이 매달려 있다. 눈에 띄는 대로 제거하지만 미처 발견하지 못하면 어느 것은 축구공만 하고 작은 것은 주먹만 하다. 문 열고 살아야 하는 여름엔 집안으로 들어와도 스스로 알아서 밖으로 나간다. 날이 조석으로 쌀쌀해지기 시작하면 작은 틈만 생겨도 집안으로 들어온다. 생각 없이 창문을 열어놓았다간 낭패다. 십여 마리가 커튼에 붙어 있거나 천정에 붙어 있기도 한다.

그날 밤은 등 검은 말벌 한 마리가 거실 등을 향해 날아들더니 부딪히기를 반복했다. 늘 있는 일이라 괘념치 않았다. 늦은 밤까지 원고교정을 보다 거실에서 잠이 들었다. 잠자리에 누워 뒤척이다 극심한 통증에 잠이 깨었다. 불빛이 사라지자 날지 못하고 바닥을 기던 말벌이 오른쪽 허리 밑에 붙어 있다가 움직임에 놀랐는지 침을 쏘았다. 예리한 칼에 베인 것처럼 쓰리고 따갑고 가려웠다. 조금만 스쳐도 통증이 심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일주일이 넘게 쏘인 자리가 선명하고 주위가 부어 있었다.

열흘 후, 말벌에게 쏘인 자리가 아직 아물지 않았는데 아로니아를 따러 갔다. 그곳에서 여러 군데 쐐기에 쏘였다. 황갈색의 쐐기나방 유충이다. 긴 바지와 긴 팔을 입었어도 오른쪽 팔뚝과 왼쪽 허리 위를 쏘였다. 말벌에 쏘인 것만큼이나 쓰리고 아프고 가려웠으나 닷새쯤 지나자 가라앉았다.

이번엔 무언지 모르겠다. 한동안 신지 않던 장화 속에 손을 넣다가 쐐기에 쏘인 곳에 또 쏘였다. 장화를 거꾸로 들고 털어도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물린 자국 주위로 탱탱하게 부어올랐다. 말벌이나 쐐기처럼 통증은 심하지 않은데 사흘이 지난 오늘도 부기가 빠지지 않고 가렵다.

권투선수였던 무하마드 알리의 유명한 어록이 있다. `나비처럼 날아 벌처럼 쏜다.' 이중성이다. 세상살이에 속아 본 사람들은 알 것이다. 게다가 매사에 쐐기를 박는 사람도 많다. 모두가 독성을 가진 사람들이라 그들에게 한번 쏘이면 인생이 휘청거리고 바닥까지 추락하기도 한다. 그러나 대부분 바닥을 치고 다시 올라올 때는 더 단단해지고 현명해져 독하게 생존하는 법을 알게 된다.

명절 전후로 문자 메시지나 카톡은 한결같이 행복하고 즐거운 추석 명절 보내라고 한다. 허리가 휘도록 일하느라 누구에게도 답을 하지 못했다. 긴 연휴에 나들이는 꿈도 꾸지 못한다. 차례 끝에 뒷정리가 끝나면 고추도 손질해야 하고 밤이나 도토리도 갈무리해야 한다. 할 일이 넘친다. 이때쯤이면 온몸이 아파 물리치료를 받거나 마사지를 받는다. 특히 어깨와 손목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아 불편하고 종종대고 다니니 다리도 무겁다.

헌데 별일이 생겼다. 종일 녹초가 되었다가 자고 나면 거뜬해진다. 독충 덕에 독을 품고 아프지 않다니, 이제부터는 독하게 생존하는 것들을 불편하게 생각지 않고 적절하게 이용할까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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