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라 위해 헌신하신 우리 고장 역사적 위인을 찾아서
나라 위해 헌신하신 우리 고장 역사적 위인을 찾아서
  •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 승인 2018.09.30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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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북 역사기행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김명철 청주 현도중 교장

 

충북학생교육문화원에서 중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 `2018. 하반기 충북학생문학기행'에 1일 가이드를 했다. 학생들의 인문학적 감수성 고취와 올바른 역사의식 함양을 주제로 권역별로 나눠 실시했는데, 필자는 중부권(청주, 진천, 증평, 괴산) 학생 40여명과 함께 `나라를 위해 헌신하신 역사적 위인들의 생가 탐방'이라는 주제로 이상설 생가와 손병희 생가, 신채호 영당, 박춘무 의병장 유적지를 답사했다.

맨 처음 찾은 보재 이상설 선생 생가는 진천 뜰을 가로질러 초평면 쪽 산직마을에 있다. 이곳에 충청북도기념물 제77호로 지정된 초가집인 이상설의 생가와 숭렬사, 그리고 동상과 숭모비가 있다. 헤이그 특사로 잘 알려진 보재 이상설 선생은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낸 분이다. 그러나 자신의 처지에 굴하지 않고 열심히 노력해 24세 때 과거에 합격했으며, 한국 최초로 근대적인 수학 교과서를 저술하는 등 그를 가리켜 `신구학문을 겸비한 한국 제일의 학자'라고 평가 했으며, 안중근의사도 `가장 존경하는 인물'로 이상설을 꼽았다고 한다. 1906년 최초의 항일 민족 학교인 `서전서숙'을 세웠는데, 지난해 서거 100주년에 즈음하여 선생의 얼을 계승하는 의미에서 서전중학교와 서전고등학교가 개교한 것은 의미가 있다.

두 번째로 만난 분이 3·1 혁명의 주동자 손병희 선생 생가였다. 청주시 북이면 금암리 한적한 시골 마을 이곳은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 중 한 사람인 손병희 선생이 태어나 자란 곳이다. 생가는 정면 4칸, 측면 1칸 반의 초가집으로 원형을 보존하고 있는데, 서자의 설움을 극복하고 민족의 지도자로 헌신한 선생의 정신을 본받아야겠다고 다짐을 한다.

세 번째로 찾아간 곳은 단재 신채호 선생이 어린 시절 학문을 연마하고, 성장했던 고향마을 `고드미'이다. 민중의 의식 독립을 통한 조국의 완전 독립이란 희망을 바라보았던 선생의 묘소와 영당, 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다. “역사만이 희망이다.”라는 명제를 가슴에 안고 실천적인 삶을 살았던 단재 신채호 선생. 선생은 갔지만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모습을 함께 참여한 학생들 모두의 가슴속에 깊이 새길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찾아간 곳은 청주 흥덕구 비하동 부모산성 아래 `박춘무삼대창의사적비'가 세워져 있는 민충사였다. 할아버지 박춘무, 아들 박동명, 손자 박홍원 3대가 나라를 위해 목숨을 건 공적을 기리기 위한 비석이다. 한 사람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도 영웅으로 추앙해야 되는데 3대가 의병장으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쳤으니 이보다 더한 노블리스 오블리주가 있겠는가?

학생들과 유적지를 답사하면서 마음 한켠이 허전한 느낌이 들었다. 유적지에 무궁화 꽃이 별로 보이지 않았다. 내년 봄에는 무궁화를 많이 심어서 나라 사랑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길 바란다. 그리고 최근에 방서지구 신설학교 교명 선정 논란도 단재초등학교로 반드시 결정되길 바란다. 위대한 민족의 스승인 단재 선생의 호를 딴 학교에서 개인의 이기적인 성취와 성공만을 위한 사람이 아니라 진정으로 나라와 민족을 위해 헌신할 수 있는 큰 꿈을 꾸는 이 시대의 지도자들이 많이 배출되는 명문 학교가 우리 지역에 세워지길 소망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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