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추석
어머니의 추석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27 19: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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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어머니는 성묘를 가지 못하셨다. 마음은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곁으로 달려가고 있었으나 미수(米壽)의 세월이 어머니를 붙들었다. 차츰 약해지시는 모습을 보면서 어머니에게 추석이 몇 번이나 남았을까 하는 생각을 처음으로 해보았다. 내년 추석은 함께 지내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자 마음이 어수선해졌다.

어머니가 스스로 성묘를 포기한 것은 올해가 처음이다. 전에는 자식들이 한사코 만류해서 거른 적은 있었지만 스스로 포기한 적은 없었다. 그런 어머니의 올 추석은 적막했다. 성묘를 못 가신 것도 그렇지만 출가한 손자, 손녀들이 각자의 사정 때문에 내려오질 못했기 때문이다.

추석연휴 나흘을 어머니와 오롯이 함께 보내며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평소 우리의 대화는 어머니가 기억에 남아있는 가족사를 서너 번씩 되풀이하여 말하고, 내가 추임새를 넣는 정도였으나 이번엔 사뭇 달랐다.

어머니가 꺼낸 주제는 뜻밖에도 `잘 죽는 것(well dying)'이었다. 이제 죽음을 준비할 때가 되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당신은 병원의 침대에 누워서 죽기는 싫다고 하신다. 자신의 힘으로 걷고, 자신의 힘으로 음식을 먹고, 자신의 힘으로 숨을 쉴 수 있을 때까지만 살고 싶다는 것이다. 자신이 의식이 없는 상태에 빠지거나 말 못할 상황에 처하더라도 결코 생명을 연장하는 장치나 치료는 하지 말라고 당부하신다. 그렇게 생명을 유지하는 것은 삶이 아니라고 했다. 100세 시대라지만 무조건 오래 사는 것은 축복이 아니라 가족과 사회에 폐가 될 수 있다는 말씀을 들으면서 숙연해졌다.

어머니는 4년 전의 아버지 죽음에서 많은 영향을 받은듯하다. 아버지는 평소에 병원에서 죽고 싶지 않다고 입버릇처럼 말씀하셨다. 또 가족이 아닌 간병인이나 다른 사람의 손에 자신의 몸을 맡기는 것도 원치 않았다. 당신이 사셨던 정든 집 소파에 앉아 아무런 고통 없이 잠자듯이 가기를 간절히 원하셨다. 그런 바람 때문이었는지 아버지를 돌보시던 어머니의 건강이 악화되어 자식들이 아버지를 병원으로 모실 것인지, 간병인을 둘 것인지를 의논한지 며칠 후 아버지는 홀연히 세상을 떠나셨다. 누구도 예측하지 못한 일이었다. 아버지가 평소보다 특별히 더 약해진 것도 아니었다. 그런데 당신의 바람과 관계없이 병원이나 간병인을 선택해야 하는 어쩔 수 없는 상황에 놓이게 되자 그동안 팽팽하게 유지해왔던 삶의 의지와 긴장의 끈을 놓아버리신 것으로 보인다.

아버지의 갑작스런 죽음을 야속해하던 어머니가 이제는 아버지의 죽음을 닮고 싶어 한다. `죽음은 삶의 한 단계이고, 삶이 거쳐 가야하는 마지막 절차'라며 `나는 잘살아왔기 때문에 행복하게 죽을 권리도 있다'고 하셨다. 그러면서 평소 좋아하시는 봉선화 2절을 읊조리듯 부르신다. `어언 간에 여름 가고 가을바람 솔솔 불어 / 아름다운 꽃송이를 모질게도 침노하니 / 낙화로다 늙어졌다 네 모양이 처량하다.'

어머니와 대화를 나누다보니 추석날이 저물어갔다. 갑자기 어머니가 좋아하시는 소 갈비찜을 해드리고 싶어졌다. 슬그머니 시장에 나가서 소갈비와 재료를 사다가 밤새 갈비찜을 만들었다. 갈비찜을 먹으며 어머니와 나는 다짐했다. 행복한 죽음을 위해 더 참되고 보람된 삶을 살자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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