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난 원숭이 실험과 남북정상회담
화난 원숭이 실험과 남북정상회담
  •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 박사)
  • 승인 2018.09.26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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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 박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교육심리 박사)

 

우화(寓話)와 같은 심리학 실험이 있다. 이 실험이 실제 행해졌는지 확실치는 않지만 심리학이나 경영학 교재에 종종 소개된다. 이 실험은 `화난 원숭이 실험(angry monkey experiment)'으로 불리며 우리에게 집단주의적 동조성과 관습에 대한 의미 있는 통찰을 전해준다.

동물원 우리 한가운데에 바나나 한 꾸러미를 걸어 둔 장대를 세우고, 이틀이나 굶어 화가 난 원숭이 4마리를 우리 안으로 집어넣는다. 배고픈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장대를 타고 올라간다. 거의 다 올라가서 장대 위 바나나에 손이 닿을 무렵 실험자는 호스로 물세례를 퍼부었다. 물벼락에 굴복한 원숭이들은 후다닥 장대에서 내려왔고 주린 배를 움켜쥐며 장대 위의 바나나를 힐끗힐끗 쳐다볼 뿐이다. 다음 날 실험자들은 원숭이 4마리 중 두 마리를 우리에서 빼고 대신 이틀간 굶어 화가 난 새로운 원숭이 2마리를 투입한다. 신입 원숭이들은 장대 위 바나나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장대를 타고 올라가려 했지만 기존에 있던 고참 원숭이들이 그들을 할퀴고 때리면서 강제적으로 끄집어내려 물세례를 받지 않도록 해준다. 셋째 날, 첫날부터 있었던 왕고참 원숭이 두 마리를 우리에서 빼고, 다시 이틀 굶은 신입 원숭이 2마리를 우리에 넣었다. 어떤 현상이 일어날까? 신참들은 바나나를 보자 장대로 돌진했지만 기존에 있던 원숭이 2마리는 필사적으로 신참들을 막았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셋째 날의 고참 원숭이들은 실험자가 물벼락을 내려 바나나를 못 먹게 하는 것을 직접 보거나 경험하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이 원숭이들은 물벼락에 대해 몰랐는데도 신참들이 바나나를 먹지 못하도록 막았다. 실험자는 셋째 날부터는 물 호스를 준비하지 않았다. 만약 원숭이들이 바나나를 먹으려고 노력했다면 마땅히 얻을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젠 물벼락을 맞을 위험이 없는데 어떤 원숭이도 손만 뻗으면 얻을 수 있는 바나나에 접근하지 않았다. 우리에 사는 원숭이들 세계의 `관습'이 된 것이다. 둘째 날에는 이것이 물을 피하는 좋은 관습이었지만, 셋째 날이 되자 이 관습은 나쁜 관습이 되었다.

인간이라고 해서 다를까? 물론 많은 사람이 해왔던 관습적인 것들에는 분명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처음의 원숭이들이 물벼락을 맞았던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나중에는 이유도 모른 채 특정 행동만 남아 그것만 기억하게 될 수 있다. 시대를 지배하는 관습은 오래 지속된 역사성에 의해 지지받으며 권력자들에 의해 재생산된다. 그리고 집단주의적 동조성은 사회적 무의식으로 전염될 수 있다.

70년의 분단과 아픈 전쟁의 비극적 기억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은 지금 누구도 경험해보지 못한 미래를 만들어 가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다. 남북관계에 대해 다양한 의견과 정치적 색깔이 나올 수 있고 또 그러한 의견들은 존중돼야 한다. 다만 변화를 감지할 줄 알고 또 인정할 줄 알아야 한다. 지금의 북한 사람은 50년 전의 북한 사람이 아님을, 북한도 변하고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임에도 변화가 두려워 더 나은 미래를 보장함에도 불구하고 애써 외면하고 있지는 않은지. 변화 속에는 위기만 있는 것이 아니라 기회도 함께 존재하기 때문에 기회를 읽을 수 있는 혜안을 가져야 한다.

다시 `화난 원숭이 실험'으로 돌아가서, 만약 새롭게 들어오는 모든 원숭이가 이처럼 수용적 사고에 매몰된 원숭이라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이 관습은 영원히 이어질 것이다. 이런 관습을 없애려면 기존지식과 상황에 의심을 품어야 한다. 그리고 옳지 않은 관습에 과감히 도전할 때 원숭이들은 장대 위의 바나나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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