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논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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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충청타임즈
  • 승인 2007.03.14 09: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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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일보 속간을 축하하며…
김 승 환 <논설위원·충북시민사회단체 상임대표>

충청일보 속간(續刊)을 축하한다. 충북지역을 토대로 하면서 전국적 일간지를 지향하는 충청일보가 속간된 것은 여러 가지 면에서 의미가 있다. 혹자는 충청지역에 신문이 많다는 것을 예로 들어서 신문의 창간 또는 속간을 비판적으로 보는 시각도 있지만, 신문이 많다고 해서 꼭 나쁜 것만은 아니다. 신문이 아무리 많더라도 정론직필의 정도(正道)를 지키고, 사회에 순기능을 하며, 부정하거나 부당하지 않으면 문제가 될 것이 없다.

유사한 이름의 두 신문인 충청타임즈와 충청일보가 병립(竝立)하게 된 것은 필연적인 이유가 있다. 무엇보다도 두 신문의 정신이 다르고 지향의 목표가 다르며, 경영의 방법도 다르다. 따라서 두 개의 유사한 이름이 공존하게 된 것은 우연이 아니고 필연이다. 오히려 비슷한 이름의 신문이 서로 선의의 경쟁을 한다면 언론환경은 더욱 좋아지고 언론 정의는 앞당겨질 수 있다. 그런 점에서 오랜 역사를 가진 충청일보나 1년 7개월의 역사를 가진 충청타임즈는 각각 자신의 정신에 충실함으로써 자기정체성을 강화해야 한다.

2004년 9월 충청일보 노사분규가 일어났을 때, 당시 경영진은 이렇게 말했다고 전한다. '직장이 폐쇄되면 충청일보 직원들은 자연히 실직하는 것이다. 직장은 경영권을 가진 사람들이 폐쇄할 권리가 있다. 그러니 충청일보 직원들은 실직하지 않으려면 자본의 명령에 따르라.' 이 얼마나 오만한 자본인가. 오만한 자본은 직장과 직업을 자본이 베푸는 시혜(施惠)로 간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자본이 아니어도 직장이 존재하며 신문이 발간될 수 있음을 보여주어야 했다. 동시에 자본이 직장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인간이 직장을 만든다는 사실도 보여주어야 했다. 또한 들뢰즈(G. Deleuze)식으로 말해서 끊임없이 인간을 쫓기도록 만들면서 불안을 조장하는 자본과 욕망을 제어할 수 있음도 보여주어야 했다.

그래서 충청일보 직원들과 시민민중운동가들이 뜻을 모아 창간한 것이 바로 충청타임즈다. 그런 점에서 충청타임즈는 자본에 대한 인간의 승리이며, 억압을 딛고 일어나 쟁취한 자유이고, 투쟁의 빛나는 전과(戰果)다. 그런 점에서 충청타임즈는 단지 신문이 아니라 역사철학이며, 사회사적 이정표인 것이다. 이런 이유 때문에 충청타임즈는 서민과 약자를 위한 신문을 표방했고 진보적 민주언론임을 선언했다. 독자들이 보기에 다소 부족한 부분이 있겠지만, 2년이 채 안된 신생 신문이라는 점을 감안한다면 지금까지 이룩한 성과만으로도 언론사에 남을 일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처럼 충청타임즈, 다섯 글자에는 이 시대의 주인이 자본이 아니라 인간이라는 고귀한 정신이 담겨 있다.

반면 속간된 충청일보는 전통을 계승한다는 의미가 있다. 충청일보의 전통과 역사를 살리는 것은 분명히 의미 있는 일이다. 따라서 3년여 냉동상태의 제호(題號)에 생명을 불어넣고 그 전통을 살리며 언론으로서의 사명을 다하고자 하는 노력은 매우 훌륭하다. 따라서 충청일보 또한 충청타임즈와 대립이나 갈등을 빚을 이유가 없는 것이다. 다만 이름이 비슷하므로 독자들의 오해가 있을 수 있지만, 그것은 오히려 작은 문제다. 비슷한 이름이 가지는 역사적 모순을 서로 극복하고 각각 그 정신을 잘 살려나가면 그만이기 때문이다.

충청일보는 임직원들의 비상한 각오처럼 과거를 딛고 다시 태어나 참언론으로 거듭나겠다는 것은 주목할 만한 선언이다. 나아가 전국지로 도약하여 지구촌의 미래비전을 정확하게 제시함으로써 세계 속의 대한민국을 선도하는 신문으로 새롭게 탄생하겠다는 목표는 존중받아야 할 전망이다. 나는 충청일보의 이러한 전망이 실현되기를 기대하면서 애정을 가지고 지켜볼 것이다. 오랜 인고(忍苦)의 결과로 다시 태어난 충청일보 속간을 진심으로 축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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