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하·야·와 하며 살자
아·하·야·와 하며 살자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9.19 20: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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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뜬금없이 웬 `아·하·야·와'냐 구요? 생뚱맞을 테니 그럴 겁니다. 필자도 절친 선배인 전대길 수필가(국제PEN한국본부 이사)에게 듣고 깨우쳤으니 말입니다. `아·하·야·와'는 다름 아닌 감탄사입니다.

아름다운 꽃을 보거나 대자연의 멋진 풍광을 볼 때 자신도 모르게 터져 나오는 신음 같은 감탄사가 바로 `아!~하!~야!~와!~'입니다. 그와 같이 `아·하·야·와'는 상대방의 말과 행위에 격하게 반응하는 공감언어입니다. 칭찬과 사랑이 담긴 지상 최고의 감동 언어가 바로 아!~ 하!~ 야!~ 와!~ 이지요.

모름지기 리더는 `아·하·야·와'를 입에 달고 살아야 한다고, `아·하·야·와'를 입에 달고 살면 듣는 이도 하는 이도 유쾌하고 행복해진다며 전대길 수필가는 `아·하·야·와'의 전도사로 삽니다. 그의 말처럼 `아·하·야·와'할 줄 아는 이는 리더의 자격과 품성을 가진 사람이고, `아·하·야·와'를 주고받는 이는 행복바구니를 가진 사람들입니다.

지난주에 `맞장구치며 삽시다'라는 제하의 목요편지를 띄웠더니 많은 분들이 공감한다고, 그리 살겠노라고 맞장구를 쳐주셨습니다. 고맙다고 맞장구쳤더니 보람이 배가 되었습니다. 고수들이 마주 서서 장단 맞춰 신명나게 맞장구를 치듯 말과 글에 공감과 사랑의 말장단과 글장단을 치니 기쁨과 보람이 배가 될 수밖에.

아무튼 맞장구와 `아·하·야·와'는 사촌지간입니다. 맞장구가 관심과 공감과 동의의 몸짓이라면 `아·하·야·와'는 칭찬과 감동과 사랑의 몸짓이기 때문입니다. 상대방의 말과 행동에 `아~ 좋다', `하~ 좋네', `야~ 대단해', `와~ 최고야'라고 칭찬하고 감동하면 감격하고 사랑받으니 맞장구보다 한 수 위라 할 수 있죠. `아·하·야·와'하며 살고 싶은데 그런 감동거리와 그럴만한 사람이 없어서 못한다고요. 그렇지 않아요.

찾아보면, 마음먹으면 지천에 널려 있는 게 `아·하·야·와' 거리입니다. 70점 받던 아들이 80점 받아오면 `와! 우리 아들 80점 받았네. 대단해 우리 아들' 하며 어깨를 두드려주면 그 아들이 용기백배하여 다음에 90점 100점 받아 오잖아요.

그런데 누구 아들은 100점 받는데 하며 불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으니 아이도 부모도 불행해지는 것입니다. 아내가 넥타이를 사오거나 티셔츠를 사오면 `아! 이렇게 멋진 걸 사오다니, 우리 마눌님 안목이 역시 대단해'하면 다음엔 더 멋진 걸로 사올 걸 `색깔이 이게 뭐야'하며 핀잔을 주면 `다시는 사주나 봐라'하고 틀어지잖아요.

그래요. 이 세상에 완벽한 사람과 완벽한 선택이란 없고, 삶과 인간관계도 늘 감동적일 수도, 행복할 수도 없습니다. 있다면 이따금씩 조금 잘하고, 조금 멋있고, 조금 편하고, 조금 기쁘고, 조금 즐거울 뿐입니다. 그 조금들을 좀 더 크게, 좀 더 넓게, 좀 더 높게, 좀 더 깊게 해주는 게 바로 `아·하·야·와'입니다. 행복해서 웃는 게 아닌데 웃다 보니 행복해지더라는 어느 웃음전도사의 말처럼 일상에서 `아~하~야~와~'를 습관처럼 하다 보면 화자도 청자도 모두 감동적이 됩니다.

우리 모두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입니다. 아니 우리 모두는 사랑하기 위해 태어난 사람들입니다. 사랑을 온전히 받으려면, 사랑을 원만히 하려면 `아~하~야~와~'의 달인이 되어야 합니다.

이틀 후면 추석연휴가 시작됩니다. 이번 추석에는 귀향길이 더디고 짜증 나더라도 `아·하·야·와'하며 고향으로, 부모님 곁으로 달려가시기 바랍니다. 길가에 핀 코스모스를 보고도 `아·하·야·와'하고, 부모님 말씀에도, 자식들 근황에도, 이웃집 덕담에도 큰소리로 `아~하~야~와~'로 화답해 보세요. 웃음이 담 너머로 퍼지고, 복이 넝쿨째 굴러들어 올 것이니.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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