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해. 금강에서
고해. 금강에서
  •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 승인 2018.09.18 19: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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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요단상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정규호 문화기획자·칼럼니스트

 

대통령 전용기가 서울공항을 이륙해 서해를 거쳐 평양으로 날아가던 날. 나는 며칠 전 가을바람을 맞던 금강에서의 감회를 되새긴다.

올봄, 극적으로 남과 북의 군사분계선을 넘나들던 두 정상의 행보에 이어 북미회담과 다시 남북 정상의 만남이 되풀이되던 한반도는 아직도 뜨겁다. 아슬아슬한 교착상태를 보이며 진전의 속도가 느려지고, 종전선언이 무산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도 만만치 않다. 그 속내에 어떤 사람들은 어느새 평화와 번영, 그리고 통일에 대해 들뜬 기대를 조금씩 내려놓고 분단과 대립, 그리고 불평등과 탐욕의 토지자본에 매몰되는 익숙함에 빠지고 있다.

노란 경계선을 한걸음에 넘어 평양을 찾았던 고 노무현대통령과 달리 문재인대통령은 서해의 항로를 거쳐야 했다. 그 푸른 바다에 파아란 하늘 그림자를 아로새기며 날았을 비행기를 상상하며 금강의, 시퍼렇게 멍이 든 금강의 상처가 떠오른 건 무슨 까닭일까.

견고하게 이어지고 있는 분단과 적대적 대립이거나, 탐욕의 토건공화국을 거치면서 강물의 흐름을 방해하는 가둠일지라도 상처는 깊게 남을 수밖에 없다.

공산당으로 몰아 서슬 퍼런 국가보안법위반의 족쇄를 채우면서 그 한 사람은 물론 가족들 전체의 삶을 짓밟았던 일은 분단 이후 우리 모두를 옥조이던 일상적 굴레와 다름없었다. 그 빨갱이로 덧칠하던 학대는 단순한 좌익분자를 넘어 종북의 표현을 거쳐 어느 사이 슬그머니 최저임금과 소득주도 성장에 대한 공격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금강에서 나는 생각한다. 4대강 사업을 찬양하던 그 수많은 대학교수라는 이름의 전문가들은 모두 어디로 갔으며, 그 일을 절체절명의 과제로 여기며 마구 밀어붙이던 공무원들 가운데 `내가 잘못 판단했다'고 진실로 반성하며 고백하는 이들을 어찌하여 눈을 씻고 찾아봐도 발견할 수 없는 것인가.

흐르지 못하는 강물이 썩어 시퍼렇게 녹조를 뒤집어쓰고 있고, 강바닥은 시궁창처럼 악취를 풍기고 있는데, 이런 상처를 만든 이들의 고해는 어찌하여 나타나지 않는가. 쓸모없는 토목공사로 강물에 퍼부으며 막대한 혈세에 대해 책임을 묻는 일은 어찌하여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가.

다시 서해를 담대하게 날아가는 대통령 전용기를 상상한다. “제가 얻고자 하는 건 평화다. 국제정서에 따라 흔들릴 수 있는 임시적 평화가 아니라 국제정세가 어떻게 되든 흔들리지 않는 그야말로 불가역적이고 항구적인 평화다.” 문재인대통령이 평양 남북정상회담을 앞두고 열린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밝힌 의지는 단호하고 의연하다.

우리는 그동안 남과 북, 그 분단과 대립의 와중에 사람이 사람에게, 그리고 국가 또는 이념의 대립과 반목이 사람에게 얼마나 많은 상처를 주었는가. 그리고 그 상처를 치유해주기 위해 얼마나 반성하고 또 스스로 고해하면서 용서를 구했는가를 진심으로 되돌아 볼 수 있는 성찰의 시간을 가졌는지 진정을 다해 따져 볼 일이다.

우리는 대체로 어떤 잘못을 저지르든, 어떤 몹쓸 짓으로 사람과 자연을 학대하고 상처를 주었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잊혀 질 것이고, 또 그런 이유로 과오가 거듭 되풀이되는 세상을 아무 거리낌 없이 살아왔다. 공직자는 공직자대로, 정권의 탐욕에 아부하며 얄팍한 지식으로 세상을 혹세무민했던 교수라는 이름의 전문가들은 그들대로 정권이 바뀌면 그만이라는 생각에 머리만 감추고 호시탐탐 재기를 엿보는 세태를 못 본 척하며 살고 있다. 정권은 유한하고 공직자와 전문가를 자처하는 권력 추종자들의 욕망은 결코 끊어지거나 사라지지 않는다. 그리고 좀처럼 반성하거나 스스로 고해하는 법도 없다. 어쩌면 그들 스스로 내부에 은밀한 거래의 틀을 만들어 놓은 것처럼 때에 따라 사람만 바꾸고 있을 뿐이다. 오늘 이 사람과 그 부류에서 하던 일이 정권의 변화에 따라 상황이 달라지면 습관처럼 다른 사람을 전면에 내세우고 잠시 몸을 숨기면 그만이다. 금강에서 나는 나의 무관심과 소리 내지 못함과 흐르지 않는 생각을 고해한다. 그리고 서해로 다시 돌아오는 비행기에 세상 모든 사람들의 고해가 `항구적 평화'의 이름으로 가득 실려 있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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