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09.17 2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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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그가 돌아왔다. 여행의 피로로 조금은 수척해 보였지만 건강에 이상이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아 마음이 놓였다. 그가 집을 비운 동안 침묵을 지켰던 온 집안이 생기를 되찾고 조잘댄다. 하품을 하던 주방도 바삐 움직였다.

“당신을 두고 나 혼자 여행을 다녀와서 벌 받았나 봐.”

그의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받아들였다.

“무사히 다녀와서 고마워요.”

그 역시 나의 말을 사랑한다는 말로 알아들었을 것이다. 45년을 함께 산 우리 부부의 사랑 표현이다.

그가 친구들과 함께 백령도로 1박 2일의 여행을 계획하고 함께 가기를 원했지만 나는 저녁에 강의가 있는 날이라 동행을 하지 못했다. 그를 혼자 보내면서 백령도라는 말에 마음이 불안하였다. 나는 배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고, 백령도가 아름다운 섬이라는 이미지보다는 최북단의 땅으로 남한 본토보다 북한 내륙에 가까운 군사기밀지역이라는 위험한 곳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그가 1박 2일의 일정을 마치고 돌아와야 할 날에 `파도가 높아 배가 뜨지 않아 발이 묶였다'는 소식을 알려오자 더욱 걱정이 되었다. 여벌 옷도 한 벌밖에 준비하지 않았고 행여 40도를 오르내리는 무더위에 힘들지 않을까 불안하였다. 그도 어쩌다 내가 혼자 집에 있을 땐 꼬박 밤을 새우는 걸 알기에 수시로 연락을 하며 걱정을 했다.

그가 집을 비운 나흘은 무척 길었다. 내게 무한의 자유가 주어진 시간이었지만 외출도, 잠도, 식사도 자유롭지 못했다. 무기력하고 두려움까지 엄습하여 현관문에 이중으로 빗장을 걸었다. 그나마 책과 텔레비전이 나에게 위안이 되고 두려움을 없애주었다.

나흘째 되는 날, 그는 배의 출항을 알려왔다. 행여 파도가 높아 그가 오는 도중 배가 어찌 될까 노심초사하며 온 종일을 불안하게 보낸지라 무사귀환을 한 그가 무척이나 반가웠다.

우리는 늘 함께 한다. 시장에도, 집안 대소사에도, 여행도. 낯선 나라를 여행할 때도 그와 동행하면 마음이 편하다. 그도 나도 혼자 여행을 하는 일은 극히 드문 일이었다.

우리 부부도 여니 부부처럼 말다툼도 하고 잡았던 손을 놓기도 하며 살았다. 서로 색깔과 향기가 달라 부딪힐 때엔 모난 곳을 다듬는 아픔도 있었다. 그러나 화해와 용서를 거듭하며 살다 보니 세월은 우리 곁에 편안함을 얹어주었다.

부부란 70이 넘으면 함께 살아준 정으로 산다고 했다. 젊은이들처럼 가슴 울렁이는 사랑은 아니지만, 정의 온기가 있어 마음이 편하다. 그가 곁에 있으면 두려움도 없다. 곁에서 나를 지켜줄 든든한 사람이 있음에 가끔씩 행복하다는 생각도 한다.

곁은 대화의 장이다. 마주하여 기쁨도 아픔도 함께 나눈다. 서로의 어깨를 내어주어 고단한 몸을 쉬게 해준다.

뻘뻘 땀을 흘리며 청소를 마친 그를 위해 커피를, 나를 위해 녹차 한잔을 준비하고 나란히 앉았다. 소파 앞 탁자 위 찻잔이 다정해 보인다. 향이 다른 찻물에 달달한 설탕을 한 스푼씩 넣었다. 커피의 쓴맛이, 녹차의 떫은맛이 설탕 한 스푼으로 부드러워졌다.

삶의 무게를 참지 못하고 곁을 떠나는 노부부의 헤어짐이 안타깝다.

곁에서 든든하게 나를 지켜주는 그처럼 나도 그가 행복하도록 남은 날들을 지켜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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