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 이별
가을 이별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8.09.17 20:23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사계절 중 별칭이 가장 많은 것은 단연코 가을일 것이다. 사색의 계절, 남자의 계절, 독서의 계절 등 기존에 흔히 부르던 말이 있지만, 이별의 계절로 불리기에도 손색이 없다. 인간사에서 다른 계절에 비해 가을에 이별이 특별히 많이 이루어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가을이 이별의 느낌을 가장 풍성하게 느끼게 하는 것은 분명하다고 할 수 있다.

고려(高麗)의 시인 정지상(鄭知常)은 이별 분위기가 물씬한 계절 가을에 실제로 이별의 씁쓸한 맛을 보아야 했다.

가을 이별(送人)

庭前一葉落 (정전일엽락) 뜰 앞에선 나뭇잎이 떨어지고,
床下百蟲悲 (상하백충비) 마루 밑엔 온갖 벌레 슬피 우네
忽忽不可止 (홀홀불가지) 홀연한 떠남 멈출 수 없는데
悠悠何所之 (유유하소지) 아득히 어디로 가려는지
片心山盡處 (편심산진처) 한 조각 마음은 산 다한 곳에 이르고
孤夢月明時 (고명월명시) 외로운 꿈은 달 밝은 때를 꿈꾸네
南浦春波綠 (남포춘파록) 남포에 봄 물결 푸르를 때
君休負後期 (군휴부후기) 그대 훗날 만날 약속 어기지 마시게

나뭇잎이 지거나 풀벌레가 우는 것은 가을이면 있기 마련인 자연현상이다. 이 자연현상은 묘하게도 이별의 느낌을 만들어내는데, 돌아올 수 없는 길을 떠나는 나그네와 그것을 슬퍼하는 울음소리가 묘한 여운을 남기기 때문일 것이다. 시인에게 닥친 이별도 뜰 앞의 나뭇잎과 침상 밑의 풀벌레가 미리 알고 있는 듯하다. 멀쩡히 달려 있던 이파리 하나가 떨어지고 무덤덤하게 들리던 풀벌레 소리가 유난히 슬프게 들렸던 것이다.

가깝던 사람과의 거역할 수 없는 이별은 갑작스럽게 찾아왔고, 떠나는 곳은 아득히 멀다는 것만 알 뿐 어디인지도 모르는 막막한 상황이다. 몸은 비록 멀리 떨어져 만날 수 없지만 마음만은 산이 다하는 곳일지라도 찾아가리라 맹세하고 달 밝은 때에는 꼭 꿈속에서 만나자고 다짐해 봐도, 이별의 아픔은 달래기 어렵다. 그래서 떠나는 사람을 붙들고 단단히 약속을 해 본다.

지금 헤어지는 자리인 남쪽 포구에 봄 물결이 출렁일 때 만날 것을 잊지 말라고 신신당부하는 것으로 이별의 의식을 마감하지만, 이는 지켜지지 않을 기약임을 시인이 모를 리 없다. 나뭇잎이 지고 풀벌레가 우는 가을 모습은 이별을 떠올리게 한다. 인간사에서 어쩔 수 없는 이별이지만, 때맞추어 변화하는 자연의 모습에서 이별에 순응하는 것을 배우고 거기에 이별의 쓴맛 대신 이별의 멋까지 느낀다면, 가을의 이별이 마냥 고통스러운 것만은 아니리라.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