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 종 쳤다고 '빨치산 돕느냐' 사살…68년 만에 배상
학교 종 쳤다고 '빨치산 돕느냐' 사살…68년 만에 배상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8.09.17 15:5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1950년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소사 부르려 종…"빨치산 도망가라 신호"

재판부 "유족들에게 약 1억원 지급해야"

"소멸시효 완성" 국가 반박 안 받아들여



학교 종을 쳤다가 "빨치산에게 신호를 보냈다"는 오인을 받고 사망한 '전남 동부지역 민간인 희생 사건' 희생자 유족에게 국가가 배상을 해줘야 한다는 1심 판결이 68년 만에 나왔다.



이 사건은 여순사건이 발생한 1950년 9월께부터 1952년 3월께까지 경찰과 군인들이 전라남도 보성군 등 지역 주민들을 '빨치산', '통비분자', '부역자' 및 그 가족이라며 사살한 일이다.



서울중앙지법 민사합의36부(부장판사 설민수)는 1950년 이 사건으로 사망한 양모씨의 장녀, 차녀, 차남이 국가를 상대로 제기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에서 "피고는 총 1억400만원을 지급하라"고 원고 일부 승소 판결을 내렸다.



양씨 장녀 등은 국가가 약 5억7000만원을 지급해야 한다고 소송을 제기했다.



재판부는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정리위원회'(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 결과를 들어 "국가 소속 공무원인 (당시) 보성 경찰들은 정당한 이유 없이 재판 등 적법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양씨를 살해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이상 국가는 양씨와 그 유족들이 입은 재산·정신상 손해를 배상할 책임이 있다"고 판단했다.



과거사정리위원회 조사결과보고서에 따르면 양씨는 보성의 한 국민학교(초등학교의 이전 명칭) 훈도로 재직 중이던 1950년 7월 학교 소사를 부르기 위해 종을 쳤고, 이때 학교 인근에서 빨치산 토벌 등 작전 중이던 보성경찰은 이를 빨치산에게 도망가라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면서 양씨를 보성경찰서로 연행·구금했다.



양씨는 북한 인민군이 보성지역을 점령할 무렵 석방됐지만 국군 수복 후 다시 보성경찰서로 연행됐고, 같은 해 12월 보성군 문덕면 소재 양가락재 골짜기에서 사살됐다.



국가는 양씨 유족들이 불법행위를 원인으로 하는 국가에 대한 손해배상청구권 소멸시효(행위일로부터 5년·손해 및 가해자를 안 날로부터 3년)가 완성된 상태에서 소송을 냈다고 반박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행위일로부터 5년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일부위헌결정 등을 근거로 받아들이지 않았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