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승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 바닷가의 수도승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09.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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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자연! 그 신성하고 살아 움직이는 거대한 생명체는 그와 마주하는 신의 피조물들을 일순간에 가볍게 무화(無化)시켜 버릴 만큼 역동적인 에너지를 지니고 있다. 자연은 우리들을 실제로는 강제하는 어떤 힘을 갖지는 않지만, 그 자체로 야생적이고 카오스적인 속성을 지니므로 말 없는 위력으로 우리 내부에 어떤 힘을 불러일으킨다. 때로는 `무섭고 으스스한 것'으로, 때로는 `공포와 유사한 것'으로 우리 마음이 느낄 수 있는 강력한 정서를 불러일으키면서 숭고(Sublime)와 맞닿아 있다. 숭고는 인간의 영역을 넘어서는 초월적인 것으로서 보이지 않는, 언어로 말할 수 없는, 어떤 형태로든 가시화할 수 없는 신비한 것이다.

19세기 전반 독일의 낭만주의의 대표적인 화가인 카스파 다비드 프리드리히(Caspar David Fredrich)는 무한한 자연과 유한한 인간의 콘트라스트를 통해 숭고의 간접적 묘사를 시도한다. 당시 독일에서는 풍경화의 영역에서 신비적인 낭만주의가 발달하였는데, 그는 인간의 낭만적 정서와 신비적 · 종교적 감정을 풍경화를 통해 표현한다. 우리는 그의 작품 <바닷가의 수도승>에서 생의 활력이 순간적으로 정지된 후 한층 강하게 용솟음치는 데서 생겨나는 간접적인 감정인 숭고의 감정을 경험할 수 있을 것이다.

삼각형 모양의 모래사장 끝단에 실루엣 상으로만 인간인지 아닌지를 구별할 수 있는 한 형상이 광활하게 펼쳐진 검은 바다와 잿빛 하늘을 마주하며 오롯이 서 있다. 화면의 4분의 3을 차지하는 텅 빈 하늘과 거친 흙빛의 바다가 혀를 날름거리며 대자연 앞에 왜소한 인간을 금방이라도 집어삼킬 것만 같다. 그는 의도적으로 인간을 작게 표현하여 상대적으로 자연을 커 보이게 하였는데, 이는 무한한 자연을 캔버스라는 제한된 화면 안에 담아내기 위한 그 자신만의 고유한 방식이었다. 이러한 유형의 그림들은 인간이 대자연 속에서 느끼는 숭고한 감정을 효과적으로 보여주는데, 무한한 것을 추구하는 낭만적 정신이 자연의 모방을 통해 드러난 것이라 할 수 있다.

그에게 자연은 무한으로서의 신성함을 깨닫게 해주는 신과 같은 존재였다. 항구도시 출신이자 종교적인 집안에서 태어난 그는 대자연을 관조하며 자아 속에 있는 신을 발견한다. 그는 자연을 광활하고 인적 없는 대상세계처럼 펼쳐놓고 그 앞에 관람자를 등지고 서 있는 인간을 배치함으로써 감상자로 하여금 그 관조자의 감성을 함께 공유하게 하였다. 이렇게 그의 작품은 주로 자연을 관조하는 인간의 이미지와 종교적인 상징성을 담고 있는데, 그는 예술을 신과 인간의 매개자로 보았으며, 예술가는 창작을 통해 그 혼을 드러내야 한다는 신비적 세계관을 지니고 있었다.

정신적인 감정인 숭고는 원래 묘사가 불가능한 것이다. 우리가 프리드리히의 풍경화를 숭고감과 연결한다면 그것은 단지 측량할 수 없는 자연의 크기와 위력 앞에서 느끼는 신비감으로서만이 아니라 그가 표현할 수 없는 것을 표현했다는 점에서 일 것이다. 다시 말해 그의 풍경화는 `이데아의 세계가 감성적 방식으로 현현(顯現)한 것'이라 할 수 있다.



/미술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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