짚신과 나막신
짚신과 나막신
  • 임현택 수필가
  • 승인 2018.09.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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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임현택 수필가
임현택 수필가

 

짚신도 짝이 있다 했던가. 짚신도 신이요, 나막신도 신이다. 모두 신발이지만 짚신 한 짝과 나막신 한 짝을 신을 수는 없을뿐더러 외관상 영 어울리지도 않는다. 신발은 신발이되 제짝이 아니면 불편하고 어색한 관계다. 그렇게 머리가 허옇도록 짚신과 나막신 같은 동행을 하는 부부가 계신다.

고등학교시절 홀어머니와 가장 아닌 가장이 된 지인, 어렵사리 고등교육을 마치고 중소기업에 입사했다. 겨우겨우 생활을 영위하기 위해 투잡을 하면서 홀어머니와 생계를 꾸렸다. 사랑하는 이가 생겼지만, 여자 부모님의 반대가 얼마나 심했던지 결혼은 상상과 꿈이었던 어느 날, 여인을 보쌈하듯 데려왔다. 그리고 반강제적으로 양가 부모님을 설득해 결혼했다.

사랑만 있을 뿐 짚신과 나막신처럼 편치 않고 녹록지 않은 현실, 총체적 난국에 처한 신혼생활에 아내는 도망치고도 싶었단다. 홀시어머니의 매운 시집살이는 늘 일방적이었다. 첫 아이를 낳고 보따리를 싸 야반도주를 하려고 몇 번을 시도했으나 어린 시동생들이 발목을 잡았다. 유난스럽게 독한 시어머니, 청상으로 사시면서 오로지 독만 남아있었다. 독설과 막말로 베인 상처는 쉬이 아물지 않았다 한다.그럼에도 어찌 시곗바늘은 잘도 돌아가는지 아이가 둘이 되고 어린 시동생들도 중학교, 고등학교 진학 문턱에 접어들었다.

봄과 겨울이 줄다리기하는 삼월처럼 집안공기는 시어머니와의 관계 때문에 언제나 봄과 겨울을 넘나들었다. 가난을 항상 등에 업고 사는 시어머니는 삼월이면 진학문제로 며느리와 겨울 한복판에 서서 줄 달리기를 했다. 젊은 며느리는 가난할수록 많은 학습을 시켜야 한다고 했고, 시어머니는 목구멍에 풀칠하기도 버거운데 무슨 돈으로 쓸모없는 공부를 시키느냐고 악다구니를 내뱉으셨다. 팽팽한 신경전을 하다가 언덕바지에서 눈물을 훔치기도 수십 번이다.

세월이 약이었을까, 그렇게 수없이 많은 계절이 옷을 갈아입으면서 여린 며느리는 어느새 담대한 며느리로 변하고 시어머니는 치매와 동행하고 계신다. 생계로 짓눌렸던 삶의 무게가 한 여인을 송두리째 돌려놓았다. 기력이 점점 쇠하면서 등도 굽고 나무초리 마냥 가느다란 팔다리, 광대뼈가 툭 뛰어나온 핼쑥한 얼굴에 핏기가 없는 노인만 있을 뿐, 꿋꿋한 모습은 새벽 안개처럼 희미한 기억 속에 자리 잡고 언제부터인가 노쇠한 시어머니가 앉아계신다.

관계란 무엇일까? 사물의 관계 사람과의 관계 어쩜 관계는 인연이라 말할 수도 있다. 고래심줄처럼 질긴 것이 인연이기에 한번 맺은 연은 쉬이 풀어지지도 않는다. 해가 뜨고 지는 것처럼 자유로운 일상, 유명인도 아니다. 화려하지도 과시하지도 않는다. 외려 촌스럽다. 칠순이 목전인 아내, 매사 불협화음이 일고 엇박자로 한걸음 앞서거니 뒤서거니 달려온 세월, 이젠 대문 밖이 저승길이지만 그래도 시집살이가 행복이었다는 지인의 아내다.

미워하면서 닮은 것일까 미운 정도 정이었는지 남편보다 더 단짝이 되었고, 치매로 많은 것을 지우셨으면서도 늘 맏며느리만 찾는 시어머니 시다. 사랑에 조건이 붙는다면 그것은 사랑이 아니라 거래가 되는 것이라 했다. 겉치레 같은 나막신보다 정으로 닳고 닳은 짚신이 더 편한 세월, 오롯이 앉은 고부 앞뒤가 맞지 않은 소소한 이야기를 주거니 받거니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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