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참하는 우주
동참하는 우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9.13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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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자연적'이라고 말할 때, 우리는 `인위적'이라는 말과 대조적으로 사용한다. 이런 사고방식의 내면에는 인간과 자연이라는 이분법적인 논리가 자리 잡고 있다. 인간은 자연과는 다른 존재이고, 자연 밖에서 자연을 `관찰'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그런데 자연이란 무엇인가? 땅과 하늘, 산과 들과 바다는 자연이다. 그 속에 있는 흙, 물, 공기도 자연이다. 바이러스, 박테리아와 온갖 미생물들도 자연이다. 풀, 꽃, 나무들도 자연이다. 아메바, 지렁이, 메뚜기도 자연이다. 송사리, 가물치, 명태, 돌고래도 자연이다. 참새, 독수리, 황새도 자연이다. 토끼, 노루, 말, 호랑이도 자연이다. 원숭이, 오랑우탄, 고릴라도 자연이다. 그런데 사람은?

생각해 보라. 동물은 자연인데 인간은 자연이 아닌 이유가 무엇인가? 혹자는 자연적인 것과 인위적인 것이 확연히 구별되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데 자연을 관찰해 보면 원숭이가 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구별되지 않는가? 당연히 구별된다. 그런데 왜 원숭이가 한 짓은 자연적이라 하고 인간이 한 짓은 자연적이라고 하지 않는가? 논리적으로 따져보면 말이 안 된다. 인간들의 편견일 뿐이다. 인간도 자연의 한 부분이다. 인간도 흙, 나무, 새, 짐승들과 마찬가지로 자연의 한 구성요소다. 자연 밖에 인간이 존재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나는 자연의 한 부분이고, 그래서 이 거대한 자연인 우주에서 나는 한 개의 티끌에 불과한 것으로 생각할지 모른다. 물론 그렇기도 하다. 하지만 이것도 자연과 나를 이분법적으로 구별하는 것이다. 나는 우주 밖의 존재가 아니라 우주 속에 있는 존재이고 우주에 동참하는 존재다. 우주와 나는 지배와 피지배의 일방적 관계가 아니라 쌍방적인 관계다.

`동참하는 우주'라는 말은 미국의 물리학자 존 아치볼드 휠러(1911-2008)가 만든 말이다. 그는 노벨상을 받지는 못했지만, 노벨상 수상자들조차 물리학자 중의 물리학자라고 칭송하는 사람이다. 그 `무서운'신동이자 노벨상 수상자인 리처드 파인만(Richard Feynman)도 그의 제자 중 한 사람이다.

이 위대한 물리학자의 90회 생일을 축하하기 위해 2001년 7월 9일, 전 세계에서 300명이 넘는 물리학자들이 프린스턴 대학에 모였다. 생일을 축하는 자리는 케이크를 자르고, 축하노래나 부르는 것이 아니다. 그들은 휠러가 제안한 다섯 가지 위대한 질문(Really Big Questions, RBQs)에 대해 열띤 논쟁을 벌였다. 그 중의 하나가 바로 동참하는 우주(participatory universe)였다.

블랙홀이라는 말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 말을 누가 만들었는지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그가 바로 휠러다. 그는 블랙홀이라는 말로 우주의 그 신비한 존재를 한순간에 일반인들의 마음속에 집어넣어 버렸다. 그런 그가 양자역학적인 우주를 `동참하는 우주'라는 말 한마디로 정리해 버렸다. 동참하는 우주, 이 말보다 이 우주의 본질을, 그리고 우주와 인간의 관계를 잘 표현하는 말이 어디 있을까!

동참하는 우주란 나와 우주가 상호작용하는 관계라는 말이다. 나는 우주의 지배를 받는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니라 우주를 변화시킬 수 있는 위대한 존재라는 의미이기도 하다.

동참하는 우주는 양자역학에서 나온 개념이다. 양자역학에서는 관찰자와 관찰 대상이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쌍방적인 작용을 한다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상식으로는 내가 자연을 관찰하건 말건 자연은 자연 그대로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양자역학에서는 관찰하는 행위가 관찰대상을 바꾸어버린다고 주장한다. 그렇기 때문에 나와는 무관하게 객관적으로 존재하는 자연은 없다. 관찰하는 행위로 인해서 존재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관찰하기 전에는 다중적인 상태로 있다가 관찰하는 순간 한 개의 확실한 존재로 결정이 되어 버린다. 동참하는 우주, 나는 이 우주의 티끌 같은 존재가 아니다. 우주를 변화시키는 위대한 존재인 것이다. 내가 없으면 우주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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