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핍의 두 얼굴
결핍의 두 얼굴
  • 양철기 원남초 교장·박사
  • 승인 2018.09.12 19: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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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리학으로 보는 세상만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박사
양철기 원남초 교장·박사

 

스티브 잡스의 2015년 스탠포드대학 졸업식 연설은 우리나라를 비롯해 전 세계 많은 사람에게 울림을 주었다. 그의 연설 `Stay hungry, Stay foolish(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항상….)'는 다양하게 해석될 수 있지만 대체적으로 `항상 갈망하라 그리고 바보스럽게 살아가라)로 해석된다. 또는 `항상 결핍된 상태를 유지하고 우직하게 살아가라'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다. 필자는 `hungry'를 `결핍'으로 해석하고 싶다.

심리학자 마슬로우(Maslow)는 인간 행동의 동기를 결핍동기와 성장동기로 구분했다.

결핍동기는 생리적인 결손상태(배고픔, 추위, 불안 등)를 방지하려는 동기로 동기위계에서 하위요구들인 생리적 요구와 안전요구 등이 여기에 속한다. 결핍동기의 충족은 외부에서 오는데 음식을 먹는다든가 안전한 보행로를 걷는 것 등에서 온다. 결핍동기의 작동원리는 긴장의 감소이다. 결손이 발생하게 되면 긴장이 유발되고 이를 충족함으로써 긴장이 해소되면 만족을 하게 된다. 결핍이 오래가거나 극단적이면 몸과 마음이 병들게 된다.

성장동기는 인간의 잠재력을 실현하려는 동기로 존재적 요구에서 발생하며 욕구위계의 자기실현 요구와 일치하는 동기이다. 이는 결핍의 요구와는 달리 긴장의 감소가 아니라 즐거운 긴장을 추구한다.

그렇다면 결핍은 우리 삶에 부정적인 영향만을 미칠까.

지금 이 원고를 쓰고 있는 필자는 지독한 결핍 속에 있다. 원고 마감시간을 넘겨 진땀을 흘리며 글을 쓰고 있다. 소위 `마감효과(deadling effect)'를 경험하고 있다. 마감이 다가오면 갑자기 효율이 늘어나고 결과가 좋아지는 것이다. 시간이라는 자원이 결핍됐다고 생각하면 갑자기 집중력이 높아진다.

현대 학생들에게 대두하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는 결핍을 경험할 기회가 적다는 것이다. 아이가 책읽기에 관심을 가지기 전에 글을 가르치고, 외국인과 영어로 이야기하고 싶거나 영어로 된 영화 대사를 이해하고 싶다고 느끼기 전에 영어학원에 넣는다.

“엄마, 나 영어 배우고 싶어”라는 마음을 먹기 전에 이미 영어가 그 아이의 삶 속에 들어와 있다. 스스로 결핍을 깨닫기 전에 어른들이 알아서 결핍을 해결해 준다.

뇌과학자 정재승 박사는 아이들에게 무료한 시간과 그냥 놀 수 있는 시간의 허락을 주장한다. 예를 들어 어린아이들이 책을 읽으려 하면 “애들이 무슨 공부냐” 하면서 나가서 뛰어놀게 한다. 그러면서 부모들은 책을 즐기고 열심히 읽는다. 그러면 아이들은 `아, 책을 읽는 것은 재미있는 것이구나', `어른들은 저 재미있는 것을 우리한테는 숨기고 자기들끼리만 즐기고 있구나'라고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나도 빨리 자라서 책을 읽어야지 하는 생각을 가질 수 있다. 혹 부모들이 잠들거나 집을 비우면 읽지도 못하는 책을 열심히 읽는 흉내를 내기도 한다.

정재승 박사는 아이들에게 결핍을 경험할 수 있는 기회를 주어야 한다고 주장한다. “아, 심심해, 뭐 재미있는 거 없나” 할 수 있는 무료한 시간을 아이들에게 허락함으로 스스로 엉덩이를 떼고 일어나 재미있는 걸 찾기 위해 어슬렁거리는 시간을 허락해야 한다.

결핍이 항상 좋은 것은 아니다. 어린 시절 결핍동기에 해당하는 생리적 욕구와 안전의 욕구가 충족되지 않을 때는 정상적인 삶을 살아가기 힘들다. 그러나 지금 우리 아이들은 먹는 문제와 안전의 문제는 충족된 상태이다. 이제 학교는 아이들이 결핍을 경험할 수 있게 해줄 필요가 있다.

아침부터 하교할 때까지 학교에서는 여러 가지 프로그램으로 학생들에게 많은 경험을 제공해주려고 노력한다. 그러나 정작 아이들은 소중한 결핍동기를 경험하지 못할 수 있다. 일주일에 하루 정도는 점심식사 후 온전히 빈둥거리는 시간을 아이들에게 주면 어떨까. 우리 아이들에게 결핍을 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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