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산 … 우리 선조의 발자취를 느끼다
백두산 … 우리 선조의 발자취를 느끼다
  • 김금란 기자
  • 승인 2018.09.12 18: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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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역사기행 소감문
김민찬 음성 무극중3
김민찬 음성 무극중3

 

음성장학회에서 지원하는 백두산 역사기행 날의 아침이 밝았다. 나는 이번 역사기행을 단순히 여행으로만 생각하지 않고 우리 선조의 발자취를 느끼고 따라가 보자고 다짐했다.

내가 비행기를 타보긴 했지만 중국 비행기는 처음 타보는 터라 공포심이 다가왔다. 그러나 비행기가 이륙하고 정상적으로 비행하면서 마음이 편안해 졌다. 중국에 도착하고 공항을 나서면서 바로 `거대하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공항을 나서자마자 축구장 3개 만한 주차장이 펼쳐져 있었고, 그 주변의 건물들 또한 한국 건축물과는 차원이 달랐다. 여기서 `역시 인구 13억을 가진 나라는 스케일이 크구나'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거대한 버스를 타고 진달래 광장으로 행했다. 역시 그곳 광장에 서 있는 동상이며 모든 것이 거대했다. 우리는 저녁을 먹고 호텔로 갔다. 첫날 저녁은 한식을 먹어서 부담이 없었다.

둘째 날부터 역사기행의 본격적인 일정이 시작되었다. 첫 방문지인 두만강을 보니 덜 풀린 피로가 강을 따라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시원하게 뻗어 있는 두만강을 보면서 신기했지만 한편으로는 마음이 아팠다. 50미터도 안 되는 강 사이를 두고 반대편에 있는 북한을 보면서 착잡한 감정이 밀려왔다. 언젠가는 우리 민족이 다시 하나가 되리라는 마음을 가지고 다음 장소인 윤동주 시인 생가로 향했다.

윤동주 시인이 쓴 시의 공통점은 조국의 독립을 바란다는 것이다. 윤동주 시인은 단순한 시인이 아니라 우리 민족의 독립을 위해 힘쓰신 `독립시인'이다. 그분의 생가와 다니셨던 학교를 보니 그분의 발자취가 느껴지는 것 같아서 절로 숙연해졌다. 그러나 전시돼 있는 윤동주시인의 마네킹을 보면서 화가 났다. 중국도 윤동주 시인을 존경한다면서 마네킹은 대충 만들어 놓았기 때문이다. 나는 용정시청이 이 부분을 신경 써줬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들었다. 바로 일송정으로 향했다. 일송정은 예전 독립 운동가들이 독립운동을 계획한 역사적인 장소라고 했다. 나는 그 장소가 산 위의 소나무 밑이라서 놀랐다. 알고 보니 그 장소에서는 일본경찰이 들이닥치는 것을 볼 수가 있고, 사방에 쉽게 도망칠 수 있는 퇴로가 확보돼 있었다. 역시 우리 선조가 현명하다는 마음이 들었다.

셋째 날은 이번 역사기행의 핵심장소인 백두산을 가는 날이었다. 전날 밤에 비가 왔기 때문에 날씨가 안 좋아서 천지를 못 보면 어떡하지 라는 생각을 했다. 예상대로 날씨가 좋지 않아서 천지문은 열리지 않았다. 우리는 장백폭포에 먼저 갔다. 나는 장백폭포가 작은 폭포인 줄 알았는데 큰 오산이었다. 진짜로 거대하고 웅장한 폭포가 내 눈앞에 있었다. 아직도 그 폭포가 잊히지가 않는다. 거대한 산에서 거대한 물줄기가 바닥으로 내리꽂는데 장관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나의 작은 소원을 빌고 아쉬운 마음으로 폭포를 내려왔다. 중국에서의 마지막 해가 저물었다. 이번 역사기행에서 느꼈던 소중한 것이 있다. 바로 `오늘'이다.

우리가 살고 있는 현재도 오늘이 있듯이, 과거의 그날에도 오늘이 있었을 것이다. 그 오늘에 많은 일이 발생하듯이 미래 어떤 날의 오늘에도 많은 일이 발생할 것이다. 나는 과거의 역사, 미래의 일도 많이 중요하다고 생각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현재의 `오늘'이라고 생각했다. 현재의 오늘이 있어야 후손에게 과거의 오늘을 알릴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의 역사를 알아야 현재의 오늘이 존재한다. 현재의 오늘이 있어야 미래의 일도 존재한다. 이번 역사기행에서 깨달은 가장 큰 점이다. 이러한 기행을 보내준 음성장학회에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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