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 고문으로 순국한 윤병운씨 74년만에 독립운동유공자 인정
일제 고문으로 순국한 윤병운씨 74년만에 독립운동유공자 인정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9.11 2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신진당 조직후 만세운동 벌이다 체포 … 18세에 순국
정부 대통령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기념비 건립도

18세 어린 나이로 독립운동하다 일본 경찰에 체포돼 고문으로 숨진 청주 옥산 출신 윤병운씨(1927년생)가 작고 74년 만에 독립운동유공자로 인정받았다. 고 윤병운씨는 지난 8월 15일 광복절 70주년을 맞아 정부로부터 대통령 건국훈장 애국장에 추서됐다. 이로써 청주지역의 독립운동가로 작고 74년 만에 이름을 올리게 됐다.

윤씨는 옥산공립학교를 졸업한 후 1941년 서울 성남중학교에 진학했다. 그는 성남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 신진당을 조직해 만세운동을 벌였고, 남총독저격을 모의하기도 했다. 1942년 12월 겨울방학을 맞아 고향집(청주 옥산)에 내려와 후배들에게 독립사상과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활동을 벌이던 중 일본 경찰에 체포됐다. 이후 재판에서 3년 형을 받고 인천 소년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다 일본 경찰의 고문으로 18세에 순국했다.

여동생 윤순분(83)씨의 증언에 따르면 “변호사가 아버지에게 오빠를 설득해 재판정에 잘못했다고 말하면 미성년자라서 풀려날 것이라며 설득을 당부했지만 오히려 재판정에서 더 강하게 항일 독립의 뜻을 밝혀 결국 형을 받았다”며 “인천형무소에 수감생활을 하던 중 사망 한 두 달 전에 건강이 안 좋았는지 고향 부모님께 연락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일본 형무소에서 들어주지 않았다. 차가운 형무소에서 홀로 죽음을 맞았다”고 회고했다.

당숙 윤동수씨는 “형무소로부터 윤병운의 사망소식을 듣고 그의 아버지와 친척들이 시신을 수습하러 가보니 모진 고문으로 몸이 아이처럼 작아져 있었다”며 “조사과정에서 심한 고문을 당한 상태였다”고 생전 증언으로 남겼다.

조국의 독립에 목숨을 바쳤던 윤병운의 활약은 오랜 시간이 흐르면서 잊힐 뻔했으나 2018년 광복 70주년을 맞아 그의 공적이 인정되면서 건국훈장 애국장을 받고 독립운동 유공자가 됐다. 이에 윤병운 가족과 옥산면 마을주민들은 오는 20일 오전 11시 장동리 마을회관 앞에서 윤병운 독립운동가 기념비 제막식을 거행할 예정이다.

윤해철 이장은 “기념비는 독립운동을 하신 선생의 뜻을 기리는 의미로 가족과 마을주민들이 십시일반 성금을 모아 기념비를 건립하게 됐다”며 “옥산이 배출한 독립운동가의 애국정신을 널리 알리는 기념비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연지민기자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