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놋그릇
어머니의 놋그릇
  • 안희자 수필가
  • 승인 2018.09.11 20:2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生의 한가운데
안희자 수필가
안희자 수필가

 

추석이 잰걸음으로 다가오고 있다. 올여름 지독한 폭염 탓인지 추석 연휴가 반갑다. 굼뜬 여름은 아직도 물러설 기미가 없는데 마음은 어느새 고향으로 달려간다.

이맘때가 되면 종부인 친정어머니는 명절 준비로 분주하셨다. 엄하신 할머니의 허락이 떨어지면 어머니는 몇 날 며칠을 차례준비에 매달리셨다. 홀시어머니와 아버지 사업의 뒷바라지에 어머닌 잠시 허리 펼 새가 없으셨지만, 명절이 코앞에 다가오면 놋그릇을 먼저 챙기셨다. 어머니에게 놋그릇은 집안의 가보家寶로 여길 만큼 귀한 물건이었다. 볕 좋은 어느 하루 어머니는 뒤란에 가마니를 펴고 광에서 놋그릇을 꺼내놓으셨다. 제기며 반상기 등… 그것은 평생 어머니가 짊어지고 가야 할 업보이기도 했다. 종갓집 맏며느리처럼 묵직한 놋그릇은 겉과 속이 같은 빛깔인지라 한결같은 어머니를 닮았다. 녹 때가 끼어 얼룩덜룩하게 검푸른 빛을 띤 놋그릇은 연륜을 말해주듯 노인의 얼굴에 핀 검버섯 같았다.

어머니는 마당에 철퍼덕 주저앉으시고는 기와가루를 묻혀 짚으로 그릇을 박박 문지르셨다. 닦으면 닦을수록 면경처럼 빛나던 놋그릇은 목욕재계하여 다시금 황금빛으로 반짝반짝 윤이 났다. 그릇에 얼굴을 갖다 대면 보름달처럼 비추던 그 모습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그때마다 어머니 손톱은 바다 빛으로 물들었고 가루가 날려 콧속은 새까맣게 묻어났다. 명절이면 유난히 빛나던 놋그릇. 어머니의 몸은 고되셨지만, 당신의 마음도 녹청이 끼지 않게 세월을 두고 닦아내셨는지도 모른다. 그날 밤 손목에 자가품이 생겨 눈이 푹 꺼지도록 앓으셨어도 새벽녘에 일어나 종종거려야 하셨다. 사력을 다해 놋그릇을 닦으신 건 가문을 지키고자 하는 종부의 염원이었다.

추석 전날에는 다리가 붓도록 전이며 다식, 송편을 빚으셨다. 그 일은 달이 뜰 때까지 이어졌다. 당신이 감당해내시기엔 벅찬 일인데도 어머닌 침묵하시고 가끔 긴 한숨만 토해내실 뿐이었다.

추석날 어머니는 놋그릇에 음식을 소담하게 담으셨다. 송편과 꽃문양 틀에 박은 다식을 상에 올리면 매화꽃이 피어났다. 맛은 고소하고 온기로 가득했다. 한 입 베어 물면 솔향기 그윽하여 마치 소나무 숲 아래서 풍류를 즐기는 듯했다. 우직하게도 세월을 두고 닦으며 한숨과 눈물이 서려 있는 놋그릇에는 어머니의 질곡의 삶이 배어 있기 때문일 게다. 당신이 대문 밖을 넘어서면 큰일이라도 되는 듯 울안에 갇혀 일에만 묻혀 사셨던 어머니. 어두운 광에서 웅크리고 앉아 명절날이면 단 하루 세상의 빛이 되던 놋그릇 같았다. 매운 시집살이에 종부의 삶은 고달팠지만, 당신 몫이라 여기며 자부심도 크셨다. 어머니에게 놋그릇은 종부로서의 무거운 짐을, 가슴 속 응어리를 내려놓는 방편이 아니었을까.

어머니가 떠나신 후 놋그릇은 자취를 감추었다. 나도 결혼한 뒤에야 어머니의 속울음을 알게 되었다. 만일 나라면 그렇게 살 수 있을까. 제 빛깔을 지닌 놋그릇처럼 미욱한 내 마음도 갈고 닦으면 명경처럼 빛이 나려나. 이제 어머니도 놋그릇도 내 곁에 없지만, 달빛 아래 옹기종기 둘러앉아 웃음꽃을 피우던 그 시절이 그립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