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꽃
감자꽃
  •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9.11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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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올해 감자 농사가 잘되었다며 먹어보라고 한 상자를 주셨다. 나는 감자를 받자마자 몇 개를 꺼내 바로 냄비에 쪘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나는 감자를 호호 불며 껍질을 까니 뽀얀 속살이 드러난다. 모처럼 쪄 먹으니 감자가 팍신팍신하고 맛있었다. 감자를 보니 생각나는 사람이 있다.

20여 년 전, 모 백일장 대회에서 만난 그분의 모습이 지금도 잊히지 않는다. 그분의 모습은 수수하고 평범한 어머니 모습이셨다. 서울에서 살다 이곳으로 내려오셨다고 했는데 도시의 모습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고, 시골 냄새가 물씬 풍기셨다. 느린 말투에 가냘픈 목소리로 잔잔하게 다가왔다. 그분과는 스승과 제자라는 이름으로 인연이 시작되었다. 그분과 첫 대면을 하는 순간 나의 뇌리에 `감자'라는 말이 스쳐 지나갔다.

거리에 떨어지는 낙엽이 흩어지며 가을의 정취에 빠지게 했던 어느 가을날. 나의 갈색 바바리가 잘 어울리던 날이었다. 그 선생님과 동행한 적이 있었다. 횡단보도를 건너려는데 나의 손목을 덥석 잡으시더니 좌우를 살피신 후 빠른 발걸음으로 건너셨다. 신호등도 없는 작은 시골 동네에 차가 지나가면 얼마나 빨리 지나간다고 예순의 나이에 이십 대 후반인 나의 안전을 먼저 생각하셨다. 플라타너스 나무가 곱게 물든 둑길을 따라 선생님의 손목에 이끌려 걸어가며 선생님의 뒷모습을 한참이고 빤히 쳐다보았다.

지금 그 선생님은 팔순의 나이가 되셨다. 얼굴에는 깊은 주름이 생기고 몸도 많이 마르셨지만 처음 만났을 때의 그 느낌은 늘 변함없다.

인생을 살다 보면 여러 종류의 사람과 만난다. 달콤한 말로 사람의 마음을 끄는 사탕 같은 사람, 달고 맛있는 고구마 같은 사람도 만난다. 처음에는 호의적인 사람이 오래 겪어보면 다른 모습으로 변하는 사람도 있다. 그래서 때론 사람으로부터 상처를 받기도 한다.



하얀 꽃 핀 건 하얀 감자 파보나 마나 하얀 감자

자주 꽃 핀 건 자주 감자 파보나 마나 자주 감자

- `감자 꽃'중에서-



권태응 시인의 `감자 꽃'은 나뿐만 아니라 사람들이 좋아하는 시 중의 하나이다. 이 시를 읽으면 정겨움이 느껴지고 소박한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다.

땅을 파 보지 않고 감자 꽃 색깔만 봐도 감자의 색깔을 안다. 이처럼 마음속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겉과 속이 같은 사람이 있다. 그런 사람을 만나기란 쉬운 일은 아니다. 또한, 감자처럼 늘 같은 맛이 나는 사람을 만난 것도 쉽지 않다. 강한 중독성이나 한눈에 끌림이 아닌 살며시 스며드는 마음을 가진 사람을…….

나는 과연 다른 이들에게 어떤 사람으로 느껴질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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