뒤끝 있는 더위
뒤끝 있는 더위
  • 임도순 수필가
  • 승인 2018.09.09 2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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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가는대로 붓가는대로
임도순 수필가
임도순 수필가

 

조금 시원해진 날씨가 길을 나서게 한다. 여유 있는 날에 목적지를 농다리수변 탐방로로 정하고 즐거운 마음으로 차에 올랐다. 음성을 출발하여 잘 닦여진 찻길에서 자연의 변화를 읽으며 달린다.

간간이 떨어지는 빗방울을 맞으며 도착하여 다리 위를 걷는다. 주변의 돌을 이용하여 하천을 건너도록 과학적으로 만든 농다리 이다. 며칠간 내린 비로 물길이 깊고 빠르게 흘러간다. 오랜 세월에 걸쳐 견디어내고 이제는 유형 문화재로 등록되어 관리가 된다. 고려시대 초에 세금천을 가로질러 놓은 돌다리로 물길을 편리하게 건너도록 만들었다. 다리발을 만든 모습이며 상판에 놓인 큰 돌을 살펴보니 조상님들의 지혜가 보인다.

농다리를 건너며 연결된 탐방로를 따라간다. 더위와 가뭄을 겪으며 살아 남기 위해 몸부림친 모습이 느껴진다. 커다란 나무에 잎이 달려있는 모양이 마치 늦가을의 풍경이다. 가지 끝으로 몇 개씩 매달려 있어 살아있음을 증명한다. 양분을 만들고 저장하여 앞으로 다가올 추위를 대비하기가 벅차 보인다. 비가 내려 뿌리가 양분을 흡수하는 데 문제는 없겠지만 몇 개밖에 남지 않은 잎이 충분한 역할을 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다. 평년 같으면 나뭇잎이 많아 그늘이 되어야 하는데 현재는 가끔씩 비추는 햇빛을 가리기에도 많이 부족하다.

초평 저수지가 보이는 낮은 고개를 넘는다. 장마는 짧게 지나갔고 긴 가뭄 끝에 많은 비가 여러 날을 두고 내려 저수지를 채워주어 그나마 다행이다. 하늘다리 쪽을 향하여 발길을 옮기는데 멀리 보이는 산 중턱의 모습이 심상치 않다. 마치 늦은 가을에 단풍이 들어 산야가 변한 것처럼 보인다. 그런데 색깔이 화려하지 않고 생동감이 없어 억지로 잎이 마른 면적이 커 처연하다. 주위의 나무도 한여름을 버티어낸 흔적이 곳곳에서 나타난다.

육 년 전에 미국의 캘리포니아 주를 다녀온 적이 있다.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산이 심상치 않았다. 계곡 쪽 일부를 제외하고는 한겨울의 모습이었다. 날씨가 한국과 비슷하여 산림이 한창 우거져 푸른 숲을 연상했었다. 팔월의 산이 왜 이렇게 되었나를 안내원에게 물어보니 답이 나온다. 4월부터 11월까지는 비가 오지 않아 나타나는 자연현상이다. 물이 부족하여 더 이상 자라지 못하고 멈추는 것으로 만족하며 일찌감치 대를 이을 채비를 한 것이었다.

올해 여름의 더위와 가뭄이 자연의 변화를 느끼게 하였다. 기상 관측이래 폭염이 가장 강력하고 길었다. 평균 기온은 물론 평균 최고기온이 1위를 차지했고 일조 시간도 가장 많았으며 불볕더위 일수 또한 가장 많았다. 열대야 일수는 2위이지만 최고 기온은 몇 개 지역에서 갱신하는 기록적인 날씨였다. 더위를 참다못해 태풍이 우리나라를 향해 오기를 기다리는 어처구니없는 바람도 가졌다.

여유를 가지고 찾은 길이 숙제를 준다. 과학의 발달로 무작정 편리만 따르다 보면 지구 환경이 어떠한 결과로 보답하는지의 신호인 것 같다. 자연을 보호하여야 쾌적함을 선물로 받는다는 평범한 진리다. 더위와 가뭄의 뒤끝에 보이는 변화를 인지하고 앞으로 가는 길에 이정표가 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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