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래도 독서가 답이다
그래도 독서가 답이다
  • 박명애 수필가
  • 승인 2018.09.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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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명애 수필가
박명애 수필가

 

가을도 한걸음에 오는지 저녁 바람이 선들선들하다. 여름내 열어두었던 베란다 창을 오랜만에 닫아본다. 에어컨과 선풍기 바람마저 잠잠해 사위가 조용하니 마음이 하전하여 공연히 책을 뒤적인다. 아직 열어보지도 못한 계간지, 인문학 열풍에 구입해둔 고전들이 책상 위를 점령하고 있다.

책을 좋아하면서도 가끔은 쌓아둔 높이만큼 짐스럽기도 하다. 사실 어쩌다 독서를 거르면 눈도 가을 하늘처럼 시원하게 맑아지고 머릿속도 가볍다. 하지만 한편으론 활자중독증 환자처럼 불안하다. 무엇이든 읽기를 멈추지 않아야 비로소 마음이 편해지니 이 또한 중병이란 생각이 든다. 늘어나는 책도 처치곤란이다. 전자책을 사볼까 고민할 때도 있지만 책장을 넘기며 읽는 즐거움을 포기하고 싶지 않다.

요즘 수업을 하다 종종 당황할 때가 있다. 아이들이 전자책 단말기나 전자책 변환 어플을 이용해 책을 읽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때마다 미래의 독서는 어떻게 변화할까 궁금하다. 어떤 유엔미래포럼 학자는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여 스마트화된 미래에는 인공지능 기기가 모든 일을 해내고 서로 손가락만 대도 정보이동이 가능한 시대가 온다고 한다. 지금처럼 대학에 가기 위해 치열하게 공부하지 않아도 된다고. 모든 것이 데이터화 되고 기계가 지배하는 미래가 오면 인간은 어떻게 즐길까를 고민해야 한다고.

독서 콘퍼런스에서 그의 발표를 듣는 내내 <너무 시끄러운 고독>의 주인공 한탸가 떠올랐다. 그는 평생을 어두운 지하실에서 낡은 기계로 폐지를 압축했다. 고독한 작업 중 버려지는 종이들 사이에 매력을 느낀 책들을 추려내 자기만의 그림을 만든다. 그런 과정에서 우연히 지식과 교양을 쌓게 된 그는 점점 고단한 노동으로부터 즐거움을 느끼지만 현대화된 젊은 세대의 작업방식에 밀려 비극적 결말을 맞는다. 빛나는 문화들이 거대한 기계속으로 버려지는 현실을 그는 고통스럽게 바라볼 수밖에 없다. 여전히 아날로그적 독서에서 즐거움을 느끼는 나는 어쩌면 한탸처럼 변화하는 삶의 방식에 치이는 중인지도 모르겠다. 미래학자는 낙관적 결말로 발표를 끝냈지만 과연 희망적이기만 할지.

어쩌면 불확실한 미래 앞에 서 있기에 독서는 더 중요한지도 모르겠다. 빠르게 발전하는 과학기술은 어떤 속도 어떤 방향으로 미래를 끌고 갈지 알 수 없다. 기계가 지배하는 세상에서 인간의 가치를 잃지 않기 위해서는 지식을 주입하는 읽기에서 벗어나 미래를 읽는 창의적인 눈을 키우는 방향으로의 전환이 필요하다. 그리고 변화하는 시대에서도 치이지 않고 당당하게 주도적인 삶을 살아갈 수 있는 내공을 쌓는 것도 중요하지 않을까 싶다. 그러고 보면 인문독서 강좌가 확산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지 않을까 싶다.

두려워하기보다 적극적으로 시대에 맞설 수 있는 용기, 유발하라리의 말처럼 미래 어떤 세상을 선택할지 그 결정은 우리에게 있으니 말이다. 매년 구월이면 열리는 독서 행사들이 형식적이라 해도 반가운 건 그런 시작이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초가을 늦은 밤 무더위에 지친 마음 책갈피를 거닐며 위안을 삼아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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