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에나 관성
어디에나 관성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9.06 19: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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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월급 오백만 원인 사람의 월급이 백만 원 올랐을 때의 행복감과 월급 백만 원인 사람의 월급이 백만 원 올랐을 때의 행복감이 같을까? 다 같이 백만 원이 올랐지만 느끼는 행복감에는 큰 차이가 있을 것이다. 백만 원이라는 인상액은 같지만 인상률에서 두 경우에 차이가 난다.

오백만 원인 사람의 월급 인상률은 20%인 반면 오십만 원인 사람의 인상률은 100%다. 재벌 회장이 1억을 벌었다고 얼마나 행복감을 느낄까? 부자가 행복하지 못한 것에는 이유가 있다.

어릴 때 개구리 낚시를 해 본 일이 있는가? 실에 무엇을 매달아 풀숲 위에서 올렸다 내렸다 하면 개구리가 미끼를 확 문다. 개구리는 왜 이 움직이는 것을 물까? 개구리는 움직이는 것은 먹이라고 생각한다. 평소에 자기의 먹이인 메뚜기, 파리, 모기 등은 모두 움직이기 때문이다. 개구리에게는 움직이지 않는 것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변화만이 의미가 있다.

개구리에게만 그런 것이 아니다. 물리법칙도 그렇다. 뉴턴의 운동 법칙은 거의 모든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만물의 법칙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법칙의 근간을 이루는 중심 개념이 관성(慣性)이다. 관성이란 물체가 운동 상태를 그대로 유지하려는 성질이다. 우리의 일상용어로 말하면 타성(惰性)이라고 할 수 있다. 하던 습관 그대로 하는 것을 말한다. 외부로부터 힘이 작용하지 않으면, 정지해 있는 물체는 계속 정지해 있고, 운동하는 물체는 계속 같은 운동을 하게 되는데, 이런 특성을 관성이라고 한다.

사람도 고집이 센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이 있듯이 물체도 관성이 큰 것이 있고 그렇지 않은 것이 있다. 관성의 크기를 물리학에서는 질량이라고 부른다. 쉽게 말하면 무거울수록 관성이 크다는 말이다. 관성이 크면 변화가 어렵다. 관성이 작은 생쥐는 이리 뛰고 저리 뛰고 할 수 있지만 관성이 큰 코끼리가 생쥐처럼 이리 뛰고 저리 뛸 수는 없다. 관성 때문이다. 작은 자동차는 쉽게 멈추고 출발할 수 있지만 큰 차는 그렇지 못하다. 관성이 때문이다.

자연법칙과 사회법칙은 전혀 별개로 보이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다. 아인슈타인 하면 상대론만 생각하지만, 그는 광전효과로 노벨상을 받았고, 다른 많은 업적을 남겼다. 그중에서 꽃가루가 물의 표면에서 이리저리 운동하는 현상(브라운운동)을 설명한 것으로도 유명한데, 그와 똑같은 수식이 아인슈타인보다 먼저 경제학의 주식 변동 방정식에서 나왔다고 한다. 꽃가루도 가벼운 것은 쉽게 이리저리 움직이지만 무거운 것은 심하게 움직이지 못한다.

주식시장에서 주식도 마찬가지다. 큰 회사의 주식은 변동이 적지만 작은 회사의 주식은 변동이 크다. 주식을 꽃가루로, 투자자를 물 분자로 보면, 주식의 등락이 꽃가루의 운동과 동일한 현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주가의 변동이 브라운운동과 동일한 수식으로 설명된다는 것은 자연과 인간 사회가 비슷한 원리의 지배를 받고 있다는 증거가 아닐까.

학교도 관성이 큰 집단이다. 우리 사회에서 학교보다 더 큰 집단이 어디 있는가? 군대가 큰 집단이기는 하지만 학교의 크기에는 미치지 못한다. 큰 집단이다 보니 변화가 어렵다. 코끼리 보고 생쥐처럼 뛰라고 하는 것은 무리다. 하지만 우리 사회는 학교가 변해야 한다고 한다. 그것도 매우 급격히 변해야 한다고 한다. `급변하는 사회', 이것은 현대의 특성이자 병이다. 하지만 변화에는 저항이 따르게 마련이다. 덩치가 클수록 관성이 크다. 학교는 관성이 매우 큰 집단이다. 이런 학교의 교육정책을 5년이 멀다하고 바꿔 제낀다. 그 수많은 학교, 그 수많은 교사, 그 수많은 학생이 코끼리 생쥐 뛰듯 해야 한다. 이래서 학교가 제대로 돌아갈 수 있을까? 뭐 하나 제대로 익혀서 이제 잘 가르칠 만하면 다른 것으로 바꿔 버린다. 이래서 교육이 제대로 되겠는가?

자연에만 관성이 있는 것이 아니다. 개개 인간도 관성이 있고, 학교도 관성이 있고, 한 국가도 관성이 있다. 교육부 장관은 학교의 관성에 대해서, 대통령은 국가와 국민의 관성에 대해서 좀 알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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