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소유 : 법정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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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9.05 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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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오랜만에 법정의 글을 다시 접했다. 두 가지가 놀라웠다.

하나는 그의 문체였다. 문학이라는 것이 영원하듯 그의 날카로운 감각과 적당한 표현이 새로웠다. 예전에는 그다지 못 느꼈던 것이었다. 글쎄, 뜻에만 초점이 모여 있었는데 이제는 겉이 보인다. 겉이 반드시 뜻을 만들어주는 것은 아니지만, 뜻까지 가는 길에 그런 겉들이 잘 짜인 장치처럼 놓여있었다. 치장(治粧)이 장치(裝置)라니, 수사(修辭)가 사수(射手)라니. 치장은 의미를 위해 잘 놓인 장치가 되고, 수사는 마음을 저격하는 사수가 된다.

다른 하나는 세월을 이겨내는 그의 정신이었다. 무소유, 언제나 얻을 수 있는 버림인가. 그 자신도 소유하지 않기 위해 무던히 애쓰다 죽었다. 그리고 무소유야말로 모든 것을 소유할 수 있다는 가르침, 아무것도 갖지 않을 때 온 세상을 갖게 된다는 말씀, 크게 버리는 사람만이 크게 얻을 수 있다는 글. 아직까지도 그의 교지가 생생하다. 자신도 버리지 못해 마음 썼다는 고백, 매일 하나씩 버리겠다는 다짐, 물건으로 인해 마음 상하는 일, 소유욕에는 한정도 휴일도 없다는 관찰. 우리의 나날을 담는다. 오늘이나 50년 전이나 달라진 것이 없다니.

좋은 글을 세월은 넘어선다는 것을 실감했다. 그가 죽으면서 그의 글조차 없애라고 했다지만, 장차 어찌 될 지는 죽은 자가 나설 바가 아니다. 나도 그의 책 몇 권이 있지만, 가장 유명한 무소유라는 책은 어떻게 해서 내 책이 된지는 모른 채 `대구 강의 후(後) 포항문고에서… 1999.10.27.' 그리고 서점의 날짜 도장이 찍혀있다. 누구였을까? 이 책의 주인은. 그는 왜 대구를 갔을까? 그의 강의였을까, 그가 한 강의일까? 포항은 왜 갔을까? 그리고 포항까지 가서 어쩌다 서점에 들렸을까? 어쩌다, 이렇게 흘러 흘러 오늘 내 잠자리 옆에 놓이게 되었을까? 책과의 만남과 헤어짐도 무소유의 흔적인가?

내가 고등학교 때 본 법정의 무소유는 문고판이었고, 책 뒤표지에 법정이라고 추정케 하는 스님의 뒷모습 사진이 실려 있던 것이었다. 회색 베옷에 하얀 고무신을 신고 걸어가는 스님의 모습이었다. 머리에는 커다란 밀짚모자가 걸쳐 있었다. 내가 왜 그 사진을 기억하는지 나도 모른다. 그러나 맨손을 앞세워 산길을 걸어가는, 산으로 들어가는 그의 모습과 무소유는 잘 어울렸다. 그 책은 또한 어디로 흘러갔을까?

고급아파트를 걱정하면서 `심지어 2천만 원짜리, 파격적인 가격, 파격적인 충격'을 말하는 것으로 보아 근 50년 만에 집값이, 물가가 100배 올랐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었다. 요즘 비싼 아파트는 20억은 하니 말이다. 이런 공부 안 하나? 문학과 물가상승.

법정에 대해 사람들이 잘 모른 것이 그가 학승이라는 사실이다. 그는 열심히 공부했고, 번역도 꽤 했다. 내가 본 경전 모음집인 `수타니파타'가 곧 그의 번역이다. 고등학교 때 보았는데, 그때 외운 구절이 생생하다. “소리에 놀라지 않는 사자처럼, 그물에 걸리지 않는 바람처럼, 흙탕물에 더럽혀지지 않는 연꽃처럼, 무소의 뿔처럼 혼자서 가라.” 이 표현은 곳곳에 몇 번 나온다. 얼마나 아름다운 비유인가. 그래서 법정도 아름다운 문체를 닦을 수 있었던 모양이다.

난 법정이 일단 잘생겨 좋다. 글쎄 출판사의 상술인지 뭔지는 몰라도, 법정 사진을 출판사에서는 `단적으로' 잘 썼다. 정말 단적이다, 극단적이다.

법정 이래 잘 생겨 좋아했던 글쟁이는 김일성을 만났다는 송두율 선생이었다. 그의 내재적 접근이다, 그의 사진에 빠져 그의 책을 샀다.

얼마 전 법정 유품을 모아 놓은 길상사에 가서 그의 초상을 보았다. 여전히 잘 생겼다. 사람은 잘생기고 볼 일이다. 아니, 잘생겨져야 한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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