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추석 달은
올해 추석 달은
  • 최명임 수필가
  • 승인 2018.09.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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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최명임 수필가
최명임 수필가

 

그분을 위해 메를 담을 때마다 마음이 짠하다. 전쟁 통에 행방불명이 된 작은아버지시다. `북으로 갔다, 전쟁터에서 죽었다.'소문이 분분했다. 소문을 인정할 수 없는 가족들은 희망으로 버틴 지 수십 년, 지금은 명절 제사상에 메를 하나 더 올리고 있다. 다행히 한 점 혈육을 남기고 가셨다.

그분은 아직도 청년의 모습으로 가족들의 가슴에 살아있다. 살아계실 거라는 희망을 염두에 두고 시누님은 이산가족 상봉 때 신청을 했다. 어떤 기별도 받지 못한 채 전쟁의 상흔은 딸의 가슴에 벌겋게 남아 있다.

빨간 완장을 두르고 핏대 올리는 자의 감언이설에 속아 혹, 북으로 갔을까. 그들의 이념은 지상 낙원, 정녕 행복한 미래였으니 가난한 이들이 그때 얼마나 빨갛게 물 들어갔을까. 우리는 그들에게 돌을 던질 수가 없다. 북으로 가셨으면 가족이라도 두었을 텐데 감감무소식이다. 이제야 말이지만, 진작 난리통에 외로이 숨을 거두었는지도 모른다.

어린 시누님은 전쟁이 빼앗아 가버린 행복이 늘 그리웠을 거다. 우여곡절 있어 어머니와 생이별까지 하였으니 그 어린 시절이 어떠했을까. 만나면 늘 가슴 한구석이 뻐근해 온다. 슬픔이 병이 되었는지 평생 지병으로 고생하시는데 위험한 고비도 수차례, 희망을 놓지 않으니 명줄도 놓지 못하시는 걸까. 내가 제사를 모시게 된 지 10여 년이다. 산사람 제사를 지내는 것이 아닌가 싶었지만, 시누님이 흔쾌히 허락하고 고맙다는 인사를 하셨다. 어느 날 어머님이 명절날 메와 술 한 잔을 따라 대문 밖에 두라고 하셨다. 작은아버지가 불효를 저지른 죄로 제사상 앞에 앉지 못하신단다. 귀신이 되어서야 고향에 오신 시동생을 그냥 돌려보낼 수 없으니 밖에서라도 한술 뜨고 가시라는 안타까운 배려이다. 퇴출하지도 잊지도 않았는데 가문의 영역으로 들어서지 못하고 쭈뼛대는 청년을 떠올렸다. 무당의 말에 진실 여부를 가리고 싶지 않았다. 술 한 잔과 메를 담아 내놓으며 가슴 아픈 안부를 묻고 잘 가시라고 인사를 드렸다.

전쟁의 주역들은 가고 없는데 슬픈 가족사는 이어진다. 부둥켜안고 오열하는 저 그리움이 이제는 마지막이었으면 좋겠다.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았는데 어쩌면 좋을까.

남북이 다시 화해의 분위기다. 느리다. 너무 늦었다. 화해의 전령사는 어디까지 길을 트고 있을까. 기다리다 지쳐 귀신이 되어 고향을 오갔을 분들, 가는 하루가 안타까운 노모와 속 타는 아들은 조급한데 봄은 언제 오는가 말이다. 번한 속내를 아는데 `그리 쉽게 될라.'저 살천스런 무리의 밀고 당기는 수작을 보라. 갈피를 잡아야 하는데 가슴이 탄다. 언젠가는 꼭 저 살 찬 장벽이 무너지고 봇물 터지듯 통일의 소식들로 만감에 들리라. 이번에도 시누님은 얼마나 눈물을 쏟으셨을까. 만남의 장소에 빈 의자 두 개를 놓아 본다. 원망에서 그리움으로, 한 가닥 희망으로 다음을 기약하실 시누님과 어쩌면 살아계실 그분을 앉혀 드려야 하겠기에.

올 추석 달은 유난히 밝고 크게 떠오를 것 같다. 모두를 대신해서 달이 안부를 전해야 할 테니…. 부디 구름 한 점 없이 훤히 떠올라야 할 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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