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 화양연화
일상생활 - 화양연화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9.04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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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오늘 저녁같이 하자” 중국에 작업실을 두고 도자 작업을 하시는 작가님의 전화 한 통, 억수같이 내리쏟는 파도 속을 뚫고 모임장소로 향한다.

도착하니 벌써 한 잔씩 기울이기 시작한 분위기, 일 년의 기간 많지 않은 한국행이라 청주에 오면 이렇게 모인다. 오늘따라 저녁행사가 있어 막내인 내가 제일 늦게 합류, “앉아, 한잔 받고” 이렇게 이야기는 시작된다.

만남의 분위기상, 이야기를 나누는 데 술이 빠질 수 없고, 특별히 작가분의 아들이 만든 동동주가 준비되었다. 신맛이 감칠맛으로 넘어가는 깨끗하고 시원한 동동주와 단맛이 깊이 익은 무게감이 있는 동동주가 마련되었다. 안주는 배추전, 목으로 넘긴 술 한 잔에 한 입 베어 물은 배추전이 입안에서 씹히는 맛은 입안에 오래 머물수록 깊이 있는 단맛이다.

그리고 또 하나의 안주, 서로 그간 작업의 이야기, 부모와 같은 길을 걸어가고 있는 아이들이 펼쳐내는 작품 이야기, 그러면서 늘 서로에게 힘이 되는 이야기가 주로 술을 기울이기에 넘치지 않는 안주가 된다.

작가란 모든 사물의 이름을 아는 자라 했던가? 주변의 사소한 것들에서조차 의미를 찾고 존재성을 부여, 모든 것의 가치를 발견하고 작품으로 표현해 내는 사람들.

서로 하는 일이 같은 부류, 미술작업과 운영에 관련된 사람들, 그러기에 늘 예술의 힘, 삶과 예술의 경계의 고민을 삶의 시간에서 놓아 본 적이 없는 분들, 40년이 넘는 작업의 과정에서 이제 좀 작업의 맛을 알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하는 사람들. 작업의 세계는 내가 얼마나 갇혀 있는가를 터득하게 되는 순간, 자신을 끊임없이 반추해보고, 나를 최대한 여는 작업이다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 내는 안주는, 후배인 내게 자신감을 느끼게 해준다. 내가 힘들고, 정체성에서 헤맬 때 방향을 제시해주고 고민을 함께 해주었다. 내가 가장 잘할 수 있는 것, 내가 다 가지고 있기에 자신을 제대로 보고 자신 있게, 가능하면 이해하기 쉽게 펼쳐 나가라, 쉬운 이야기가 의미 있는 것이다고.

십 년이 넘는 나이 차이에도 늘 동생으로 아껴주시는 이들이 있기에 어쩌면 현재의 내가 있는 것이 아닌지, 소중한지도 모르고 만났던 사람들이 이제 30년이 넘는 지기가 되었다.

술잔이 채워지고 건네지는 시간의 흐름 속에서 무엇인지 모를 행복함이 밀려왔다. 무엇이 이들과 함께 할 수 있는 인연이 되었는가? 그렇게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인연이 되어 오랜 시간 격이 없이 이야기를 건넬 수 있는, 늘 존중해 주면서도 고민을 해결해 주었던 관계,

헤어지기 싫어서일까? 술이 익어 잔을 채우고 건네 병이 비워지자, 차를 마신다. 숙차, 청차를 번갈아 우려, 또다시 잔을 채우고 건넨다.

여지없이 차와 함께하는 달달한 이야기들, 늘 힘이 되는 서로의 삶에 빛나는 감각의 한 수가 오고 간다. 참으로 유쾌하고도 행복한 시간이다.

그런 시간 속에서도 밖의 풍광은 억수다. 그래도 난 억수로 좋다. 조카가 준비해 준 술이 있어 그러했고, 정성껏 우려내는 차가 있어서 그러했고, 맛난 이야기의 안주가 있어 그러했다. 내 생애 가장 아름답고 행복한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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