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지 않는 꽃
지지 않는 꽃
  • 김기자 수필가
  • 승인 2018.09.03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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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김기자 수필가
김기자 수필가

 

늘 오가는 길이다. 차창 밖의 저만큼에 커다란 화분이 보인다. 그냥 지나치기에는 아까울 정도로 만개한 꽃들이 눈길을 끌고 있다. 아마 동백이지 싶다. 고운 분홍의 꽃을 받쳐주는 푸른 잎과 가지조차 화분의 크기와 조화를 이루고 있으니 어찌 무덤덤하랴. 차에서 내려 실체를 확인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매일 지나는 길이라 그냥 감상하기로 했다.

꽤 여러 날을 그렇게 보냈다. 그제야 궁금함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바로 그 꽃이 조화라는 것을. 그러면 그렇지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말이 있건만 그토록 오랫동안 지지 않는 걸 보고야 조화임을 알아차렸던 것이다. 그래도 꽃을 본다는 사실이 좋았다.

지지 않는 꽃, 향기 없는 꽃을 보며 새로운 관심에 빠져든다. 나아가 사람의 마음 꽃 세상을 둘러보았다. 우리가 살아가는 데 있어서 꼭 필요한 정서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비록 조화일지라도 그 속에 스민 의미가 중요하게 다가왔기 때문이다. 겉모양에는 생기가 없을지언정 지속하고 싶은 삶의 욕구들이 꽃이 되고 잎이 되어서 살아있는 것처럼 여전한 모습으로 비치기에.

지지 않는 꽃, 사람에 비하여 늙지 않는 것의 표현이 아니다. 모든 생물은 쇠잔할 때가 반드시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다. 그래도 나는 그 꽃을 보며 새로운 확신을 얻었다. 살아 있는 동안 그때그때 처한 환경에 적응하며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을 만큼 최선의 삶을 살아가는 거라고.

때마침 TV에서 공감하는 장면이 나오고 있었다. 낡고 허름한 이발관, 수십 년을 지켜오느라 그 안의 집기와 환경들은 그야말로 타임머신을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곳을 지켜온 주인의 모습도 수없이 변한 강산의 풍경이었다. 그래도 어떤 생기, 나는 그 점을 정말 값진 전율로 받아들였다. 바로 그분들이 지지 않는 꽃이었다. 젊고 풍성하고 화려한 인생만이 보기 좋은 것은 아니었다. 지나온 세월을 잔잔하게 표현해주면서 최선을 다하는 지금의 모습이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이런 생각을 하기까지는 내 안에도 많은 물음과 답이 있었다. 살아온 날을 되돌아보면 싱그럽게 꽃피고 노닐던 기억은 드문 것 같다. 그래도 기억에 남는 것이 있다면 아이들을 키우던 때라 말하고 싶다. 고단하지 않았으며 지치지도 않았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그런 시간의 선물 위에서 오늘의 안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감사로 이어지는 무한한 표현만 있을 뿐이다.

나의 터전을 돌아본다. 누구나 자기 일에 만족할 수는 없지만, 언제부터인가 약해지는 육신을 따라 마음도 함께 가고 있었기에 놀라고야 말았다. 하루가 열흘 같고 열흘이 일 년 같은 기분을 맛보아야 했다. 그 후 자신과의 싸움에서 승리하느라 많은 전략을 세울 수밖에 없었다. 그것은 좀 더 느리게 사는 길이었다. 그리고 마음의 폭을 한 뼘이라도 늘려 가는 길이었다.

작은 것에도 감동하는 마음이 필요했다. 약하고 소외되어 가는 것에서 깊은 의미를 깨달아가는 나이에 서게 된 것이다. 그 안에서 나를 발견하며 감사하기에 이르렀다. 그저 주어진 하루하루를 소중히 여기며 아껴가기로 했다. 그것이 후회 없는 길이었다. 오늘도 지지 않는 그 꽃을 지나치며 생기를 느끼기에 애쓴다. 내게 묘약이기 되기에 충분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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