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안한 일들
미안한 일들
  • 정명숙 수필가
  • 승인 2018.08.30 2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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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정명숙 수필가
정명숙 수필가

 

거센 빗줄기에 앞이 보이지 않았다. 속도를 줄여도 온몸의 세포가 바짝 긴장한다. 도착지를 코앞에 두고 2차선을 천천히 달렸다. 갑자기 무언가에 부딪히는 소리가 요란하다. 갓길에 주차를 시켰지만 떨리는 가슴은 진정되지 않는다. 시야가 좁아져 차선을 이탈해 누군가의 차와 부딪힌 것일까, 사람은 다치지 않았을까, 보험료할증은 얼마나 오를까, 짧은 시간 속에 복잡한 생각들이 엉키기 시작했다.

트럭에서 내린 운전자가 당황한 나에게 다가와 괜찮으냐고 묻는다. 보험처리를 해야 하지 않느냐 한다. 몇 년 사이 콩콩거리기도 하고 내가 잘못한 것도 아닌데 억울한 일을 당하기도 해서 보험료가 상당히 높은 편이라 그냥 수리하면 안 되느냐고 물었다. 그는 내차가 많이 상해 보험 처리하는 게 좋을 것 같다며 미안하다고 한다. 비 때문에 서로가 주변을 잘 살피지 못할 수도 있다고 애매하게 대답했다.

양쪽 보험사 직원이 오자 미안하다고 하던 그는 잘못이 없다고 한다. 두 차가 블랙박스를 설치하지 않아 결국 사건처리를 하고 경찰이 개입되었다. 사건 정황과 개인정보를 기록하고 주변 CCTV를 봐야 정확한 판단을 한다며 경찰관들은 갔다.

나도 그 자리를 뜨려는데 상대 운전자가 나에게 오더니 다시 미안하다고 인사를 한다. 아무 잘못이 없다고 하던 사람이 왜 미안하다는 걸까, 도대체 이건 무슨 상황인가.

경찰서에서 연락이 오길 기다리는 동안 걱정 때문에 심란했다. 차가 없어 불편한 건 참을 수 있었다. 혹여 내가 잘못한 것이라면 그 사람에게 뭐라고 사과를 해야 할까, 그날도 나는 2차선을 천천히 달렸을 뿐이라고 진술했는데 나로 말미암아 일을 복잡하게 만든 건 아닐까.

잘못해놓고 시치미 떼는 뻔뻔한 사람이라며 나무랄 것 같아 불안하고 초조했다. 아직은 잘못했다는 확증이 없는데 자꾸 움츠러들었다.

그동안 크고 작은 사고를 겪었다. 잘못했으면 정중하게 사과하고 억울하게 당할 때는 마음고생이 심했다.

나는 아무 잘못이 없는데 상대차가 실수하면 괜스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 자리에 없었다면 아무 일 없었을 텐데 하며 아쉬워하기도 했다. 삶 속에서 일어나는 일들도 마찬가지다.

굳이 돌아보지 않아도 안다. 지금도 잘하는 일보다 잘못하는 일이 많다. 인간관계에서는 더욱 심한 것 같다. 나도 모르는 사이 가족이나 타인에게 상처 주고 비난을 받기도 한다. 마음 가는 데로 산다고 관습에 어긋나는 일로 혼자 가슴앓이를 하는 일도 있다. 때로는 미안하다고 사과하고 억울하기도 하고 아쉽기도 한 삶의 길을 가면서 항상 겸손해지고 너그러워지려 노력하지만 느닷없는 사고 앞에서는 본성이 드러나고야 만다.

며칠 후, 담당 경찰관에게서 전화가 왔다.

“선생님 차는 2차선에서 잘 가고 있었는데 3차선에 정차해 있던 트럭이 출발하면서 2차선으로 진입하다 사고가 났습니다. 선생님은 아무 잘못이 없으시니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머지는 보험사에서 처리할 것입니다. 다친 곳은 없으신지요.”

상대 운전자에게 미안하다. 그 시간에 그 도로를 지나가지 않았다면 좋았을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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