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 (Gustav Klimt),
  • 이상애 미술학 박사
  • 승인 2018.08.30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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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애와 함께하는 미술여행

 

한 여인이 한 남자의 목이 잘린 머리를 들고 옷은 반쯤 풀어헤친 채 지그시 이쪽을 바라보고 있다. 지난밤에 그녀에게는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기에 그녀의 뺨은 빨갛게 상기된 채 아직도 꿈을 꾸고 있는듯한 눈빛을 하고 있는 것일까? 베일에 가려져 은근히 비치는 젖가슴의 미세한 떨림은 또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뒤 배경의 나무에 달린 황금 열매는 최초의 팜므파탈(fem me fatale)인 인류의 어머니 이브가 아담에게 먹인 에덴동산의 사과인가?

황금의 화가 구스타프 클림트의 <유디트Ⅰ>이다. 유디트(Judith)는 이스라엘의 베툴리아에 살았던 『구약성서』의 외경「유디트서」에 등장하는 여인이다. 이 여인은 정숙한 과부였는데, 아시리아의 군 총사령관인 홀로페르네스가 이스라엘을 정복하기 위해 그 지방을 포위하고 있었다.

이에 유디트는 의도적으로 온몸을 한껏 치장하고 아시리아의 군에게 위장 투항을 한다. 유디트에게 첫눈에 매혹된 홀로페르네스는 그녀를 연회에 초대하고 연회가 끝난 후 만취한 상태로 유디트와 함께 침실에 들게 된다. 유디트는 그가 잠든 사이에 그의 칼을 집어들고 있는 힘을 다해 그의 목을 두 번 내리치어 잘라버린다. 결국 힘으로 여인을 정복하고자 했던 홀로페르네스는 아름다운 여인의 유혹에 의해 죽음을 당하고 만 것이다.

미술사 속에서 홀로페르네스와 유디트의 에피소드를 다룬 많은 작품이 있었다. 그러나 대부분 작품은 홀로페르네스의 목이 잘리는 순간을 다룬 사건 중심, 즉 유디트의 행위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반면, 클림트의 <유디트1>에서는 사건은 이미 종결되고 유디트라는 여인만 남는다.

작품 안에서 관능적인 유디트가 화면 전체를 차지하고 적장의 머리는 이야기의 소재로서만 기능 할 뿐이다. 이는 클림트가 생각하는 `여성성(feminity)'과 관련이 있다. 그의 관심사는 성서의 사건이 아니라 역사와 종교적 해석에서 분리된 여자 유디트였기 때문이다. 중세까지 지속되어온 정숙하거나 용맹한 종교적이고 정치적인 여성상(female imagery)은 19세기에 들어와 개인적·본능적·관능적인 여성성으로의 새로운 해석과 함께 예술의 전 영역에 확산되었기 때문이다.

남자의 수급(首級)을 손에든 순간에도 그녀는 지난밤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오히려 초연하다. 아니 이 순간마저도 그녀의 관능적인 매력은 남자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을 것만 같다. 젖가슴 너머에서 온몸을 타고 흐르는 뜨거운 피와 반쯤 벌어진 입술, 그리고 그녀의 몽롱한 눈빛에 금방이라도 빠져들어 헤어 나오지 못할 것만 같다. 배경에 온통 수놓아진 황금의 물결은 그녀의 육감적인 몸에 한층 더 신비감을 더해주고 있다.

이상애 미술학 박사
이상애 미술학 박사

 


동서양을 막론하고 역사의 뒤안길에는 유티트와 같은 팜므파탈은 어디에나 있어왔다. 그리고 그 여인들은 치명적인 매력으로 남자를 유혹하여 역사를 뒤흔들기도 했다. 오늘날 우리의 삶도 별반 다르지는 않을 것이다. 힘에 의해 정복당하면 저항에의 의지를 얻게 되지만 유혹은 저항의 의지를 무력화시키는 치명적인 독임을 말해주는 삶의 교훈이 아닐까?

/미술학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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