멧돼지가 도와준 옥수수 수확
멧돼지가 도와준 옥수수 수확
  • 우래제(전 중등교사)
  • 승인 2018.08.29 19:5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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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생님이 들려주는 과학이야기
우래제(전 중등교사)
우래제(전 중등교사)

 

시원한 그늘에서 수박 옥수수 간식이 어울리는 계절이다. 수년 전부터 집 아래 텃밭에 옥수수를 심어왔다. 호두나무가 크기까지 호두나무 사이에 심어 몇 해 동안 잘 따먹었다. 그런데 작년부터 옥수수 도둑놈이 생겼다. 작년에는 여러 차례 방문해 한두 자루 훔쳐 먹더니만 올해는 첫 번 방문에 두 자루 정도 먹어치웠다. 그 사이 식구가 늘었나 보다. 너구리인지 오소리인지 불분명하다. 오랫동안 농사일을 해온 친구 이야기로는 굴을 판 흔적이 있는 것으로 보아 오소리 소행이라는 것이다.

어찌됐든 내일모레쯤 딸 계획이었는데 이놈들은 어떻게 사람이 따기 하루 이틀 전에 와서 먹고 갈까?

동물은 살아가는 환경에 따라 발달한 감각기관이 제각각 다르다. 높이 나는 새는 시각이 발달해 있고 땅속의 두더지는 청각이 발달해 있다. 보통 지상에 사는 동물은 영역 표시나 짝짓기나 먹이를 찾기 위해 후각이 발달되어 있다.

동물이 냄새를 맡는 기작은 대체로 비슷하다. 공기 중에 포함된 화학물질이 동물의 후각 세포에 반응하는 것이다. 동물의 후각이 민감하다는 것은 기체 내에 특정 화학물질의 농도가 아주 낮아도 느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옥수수가 여물 때 특정 화학물질이 분비된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이놈들이 사람보다 하루 이틀 전에 방문할 수 있는 것이다.

사람의 후각도 발달한 편이지만 개는 사람보다 뛰어난 후각의 천재인 것은 잘 알려진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개의 후각이 사람의 1~10만 배라고 한다. 또 후각 정보를 분석하는 개의 두뇌 영역은 사람의 해당 영역보다 40배나 더 크다고 한다. 그런데 곰은 이런 개보다 7배 더 민감해서 20㎞밖에 있는 죽은 동물의 냄새를 맡을 수 있다고 한다.

오소리는 야행성 포유동물로 세계적으로 9종이 있으며, 그중에서 우리나라 오소리(Eurasian badger)는 가장 큰 편에 든다고 한다. 족제비과이지만 곰의 생태 특성과 거의 비슷해 `작은 곰'이라 불리는 오소리는 야행성이라 시력은 좋지 않지만 뛰어난 후각과 청각을 지니고 있어 300m 이내의 접근을 쉽게 알아채는 매우 예민하면서도 똑똑한 포유류라 한다. 밤을 지배하는 최상위 포식자이지만 국내에선 사라져 가는 야생동물 중 하나이다. 오소리 다리는 너구리처럼 몸통에 비해 짧다. 그러나 너구리와는 다르게 앞발이 뒷발에 비해 길고, 정교한 갈고리 발톱이 있다. 이 발톱 덕분에 굴 파기의 달인이 될 수 있다. 그래서 영어 이름 Badger는 굴 파는 선수(Digger)란 뜻으로 옥수수밭에서도 장기인 굴 파기 흔적을 남겨 놓은 것이다. 그리고 천적에 쫓기거나 위급한 상황에 처했을 때는 죽은 척하는 능청스런 동물이다.

여물어가는 옥수수가 분비하는 화학물질. 이를 놓치지 않고 냄새를 맡고 찾아오는 오소리. 너를 어떻게 해야 할까? 덫을 놓아 잡아 버릴까? 아니면 오소리 먹다 남은 옥수수만 먹어야 할까? 글 쓰고 며칠 후. 알고 보니 주범은 멧돼지였다. 덕분에 폭염에 옥수수 수확하는 수고를 덜 수 있었지만 현재로선 멧돼지를 막을 방법이 없다. 올해는 옥수수 농사 아닌 멧돼지 농사를 지었나 보다. 내년엔 멧돼지가 먹지 않는 작물을 찾아야 하는데 새로운 걱정거리가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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