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것과 내 것
네 것과 내 것
  • 반영호 시인
  • 승인 2018.08.23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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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반영호 시인
반영호 시인

 

100년 만의 폭염. 40도에 육박하는 불볕 찜통더위는 입추가 지나고 삼복더위가 지났음에도 수그러질 기색이 없다. 더위를 식히는 데는 뭐니 뭐니 해도 동굴이 제일이지 싶어 가족과 함께 단양에 있는 고수동굴을 다녀왔다. 단양에는 고수동굴뿐 아니라 천동동굴, 온달동굴 등 동굴이 많다. 이는 단양 일대가 석회암을 기반으로 하는 카르스트 지형이기 때문이다.

동굴 앞에 다다르자 시원한 냉기가 흘러나왔다. 이래서 동굴들을 찾는 것이로구나. 굴 안은 생각보다 시원했다. 울퉁불퉁한 곳과 계단 등으로 유모차 사용이 안 되다 보니, 이제 생후 8개월 된 손녀를 아들과 며느리가 교대로 안고 가야 했다.

길이 10m에 달하는 대종유석이 내리뻗고, 사자바위를 비롯한 정교한 기암괴석들이 웅장하게 늘어서 있다. 또 선녀탕이라 불리는 물웅덩이, 석순, 석주, 동굴산호, 동굴진주 등 아름답고 희귀한 볼거리들이 많았다. 석회동굴 생성물로 동굴의 천장에 기다랗게 고드름처럼 매달린 종유석. 동굴 천장에서 떨어지는 물방울의 석회질 성분이 바닥에 쌓여 죽순처럼 자라는 석순과 천장의 종유석과 바닥의 석순이 오랜 세월에 걸쳐 자라 맞닿은 돌기둥 석주. 동굴 벽이나 천장에 있는 정교한 꽃 모양의 동굴퇴적물로 일명 동굴 꽃이라고도 불리는 석화가 탄성을 자아내게 했다. 아들과 며느리는 시원함에도 불구하고 아기를 돌보며 가느라 식은땀을 뻘뻘 흘렸으나 내심 행복해 하는 모습이다.

동굴 여행을 마치고 오는 길에 도담삼봉을 들렀다. 충주댐 건설로 1/3 정도가 물에 잠겼으나, 물 위로 드러나 있는 봉우리들이 아름다워 관광지로 많이들 찾는다.

장군봉에는 정도전이 지어놓고 찾아왔다는 수각(水閣) 삼도정(三嶋亭)이 있다. 정도전은 도담삼봉을 사랑하여 자신의 호 `삼봉'도 여기에서 따왔다고 한다. 수각에 올라갈 수는 없으나, 보트나 유람선을 이용하여 수상에서 관망할 수 있다.

단양팔경 중에서도 가장 아름다운 도담삼봉은 남봉, 처봉, 첩봉 세 개의 기암으로 된 봉우리다. 우뚝 솟아 있는 삼봉의 모습은 물안개가 차오를 새벽이 되면 그 신비스런 아름다움을 마음껏 내보인다. 조선 개국공신 정도전은 남편봉에 삼도정을 짓고 이따금 찾아와 풍류를 즐기거나 시를 지으며 쉬어 갔는데 그 경치를 너무 좋아해 자신의 호를 삼봉이라 했을 것이다.

설화겠지만 삼봉은 원래 강원도 정선군의 삼봉산이 홍수 때 떠 내려와 지금의 도담삼봉이 되었으며 그 이후 매년 단양에서는 정선군에 세금을 내고 있었다고 한다. 이를 어린 소년 정도전이 “우리가 삼봉을 떠내려 오라 한 것도 아니요. 오히려 물길을 막아 피해를 보고 있어 아무 소용이 없는 봉우리에 세금을 낼 이유가 없으니 필요하면 도로 가져가라”고 한 뒤부터 세금을 내지 않게 되었다고 전해진다.

이 설화를 듣자니 조선 최고의 학자 오성 이항복이 생각난다. 장인 권율과의 너무나 유명한 일화지만, 이항복의 집에서 자라던 감나무 가지가 자신의 집으로 휘어지자 권율은 자기 집 소유라면서 그 감을 따먹었다. 그러자 이항복은 권율의 방문에 주먹을 찔러 넣고 “그럼 이 주먹은 누구 것이냐”고 추궁했고, 결국 미안하다는 권율의 승복을 얻어냈다. 언제의 일화인지는 분명치 않으나 이런 기치를 높이 산 권율이 그를 사위로 맞아들이지 않았겠는가는 생각이 든다.

더위를 피하고자 동굴에 왔다가 도담삼봉에서 옛 선인들의 네 것과 내 것에 대한 의미를 되새겨보고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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