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행복합니다
나는 행복합니다
  • 신금철 수필가
  • 승인 2018.08.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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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신금철 수필가
신금철 수필가

 

가마솥의 찜통더위도 청주 야구장 야구팬들의 응원 열기를 꺾지 못했다. 앞사람도 옆 사람의 얼굴에도 조롱조롱 더위가 매달려 미끄럼을 타는 데 함성의 열기는 지칠 줄 몰랐다.

40도에 육박하는 살인 더위에 야구를 좋아하는 남편의 끈질긴 부탁으로 야구장으로 향했다. 6시 30분에 시작되는 한화와 넥센의 경기에는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만석인 10,500석이 가득 차도록 그야말로 인산인해를 이루었다. 더위가 아니더라도 사람의 체온만으로도 뜨거울 것 같았다.

남편은 한화의 열렬한 팬이다. 야구 경기가 시작되던 날부터 특별한 일로 외출을 하여 시간을 놓치는 경우를 빼고는 거의 야구 경기 시청을 하며 응원도 열렬하다. 야구 경기 때문에 남편에게 리모컨을 빼앗긴 부인들의 불만으로 부부싸움을 하는 경우도 생긴다니 야구경기야말로 호불호가 갈리는 경기임엔 틀림없다.

나는 셋째를 낳고 산후 조리를 할 때에 처음으로 야구경기에 흥미를 갖기 시작했다. 송진우 코치가 고등학생일 때이니 오랜 세월이 흘렀다. 남편처럼 열렬한 팬은 아니지만, 남편의 야구상식 지도를 받으며 함께 경기를 지켜본다.

야구경기의 관람 표를 구하는 게 쉽지는 않다. 야구팬인 남편을 위해 막내아들이 대전이나 청주에서 경기가 이루어지는 날에는 표를 예매하여 보내준다.

한화와 넥센이 동점을 이루는 가운데 드디어 4회 말 호잉의 홈런이 터지자 함성은 야구장의 하늘을 도가니로 몰아넣었다. 홈런과 동시에 모든 관중이 자리에서 일어나 `나는 행복합니다. 한화라서 행복합니다'를 약속한 것처럼 토해냈다. 남편도 벌떡 일어나 환호성을 지르며 노래를 따라 부르고 나 역시도 그 대열에 동참했다.

때마침 저녁노을이 작별 인사를 서두르며 붉게 타올랐다. 일흔 중반의 나이에 희끗희끗한 반백의 머리칼과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남편의 얼굴은 노을처럼 붉게 물들었고, 행복지수 100의 홍조와 웃음으로 소년처럼 빛났다. 관전하던 수많은 이들이 쏟아내는 함성과 환한 얼굴이 야구장을 행복으로 가득 채웠다.

이제껏 살아오며 그날처럼 환호하는 남편의 얼굴을 본 적이 없다. 그렇다고 그가 불행한 모습을 보인 적도 없지만 그렇게 행복한 모습을 환하게 드러낸 적이 없다.

요즘 그는 자주 나에게 행복하다는 말을 낮은 목소리로 들려준다. 남편의 친구들이나 친구 부인들이 하나둘씩 유명幽明을 달리하고, 몸이 아파 고통을 겪는 모습을 접하며 자신은 가족들이 건강하고 자식들에게 손 벌리지 않고 살아갈 수 있으며 곁에 아내가 있어 행복하다고 한다. 나 역시 남편과 같은 생각을 하며 가능한 모든 생각과 행동을 함께하려 노력하고 그를 위해 나의 불편과 불만을 참으려 한다. 나 자신의 행복도 중요하지만, 사랑하는 사람과 가족의 행복한 모습을 바라볼 때 더 행복하다.

야구장의 수많은 사람이 `나는 행복합니다.'를 노래하는 모습을 바라보는 순간 나도 행복한 사람이었다. 순간일지도 모르지만 열광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에서 근심과 시름은 잠시 얼굴을 감추었다. 나는 왠지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모든 사람들이 진정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올해엔 구직으로, 사업 실패로 많은 이들이 경제적으로 힘든 데 더위까지 한몫하여 더욱 힘이 들게 한다. 그런 그들에게 한 방의 홈런은 잠시 그들에게 위로의 소나기가 되었다.

야구선수가 던진 한 방의 홈런에서 `나는 행복합니다.'를 열창한 것처럼 폭포수 같은 경기회복의 시원한 소나기가 내려 시름에 빠진 사람들에게 진정한 행복을 안겨주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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