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각을 죽여라
생각을 죽여라
  •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 승인 2018.08.23 19: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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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요칼럼-시간의 문앞에서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권재술 전 한국교원대 총장

 

내가 땅에 서 있는 것은, 물구나무서서 지구를 발 위에 얹어 놓고 있는 것이고, 앉아 있는 것은 지구를 엉덩이에 올려놓고 있는 것이고, 누워 있는 것은 지구를 등에 짊어지고 있는 것이며, 달리는 것은 지구를 발에 얹어 놓고 공 돌리듯 돌리는 것이라고 말하면 아마도 미쳤다고 하거나, 좀 잘 보아준다면 시적인 상상력이 풍부하다고 할지 모른다.

그런데 이 말은 시적인 것도 아니고, 웃기는 것도 아니고, 과학적으로 정확한 말이다. 종이에 둥근 원을 그리고 그 위에 나를 그려보아라. 내가 달린다는 것은 땅(지구)은 가만히 있고 내가 둥근 땅의 표면을 돌고 있는 현상이다. 맞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은 지구의 입장에서 진술한 것이다. 아무 편견 없이 나의 입장에서 보면, 나는 가만히 있고 지구가 내 뒤쪽으로 돌아가는 것이 사실이다. 그런 억지가 어디 있느냐고? 그런데 그렇게 보면 왜 안 되는가? 지구 중심에서 본 것은 옳고 내 중심에서 보면 옳지 않은 이유가 무엇인가?

내가 보면 지구가 내 발 위에서 돌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그 무거운 지구를 발 위에 올려놓을 수 있는가?”라고 반문한다면 이것 또한 뭘 모르고 하는 소리다. 지구는 결코 무겁지 않다. 내 발 위에 올려 놓인 지구의 무게는 정확히 내 몸무게와 같다. 개미 발 위에 올려 놓인 지구는 정확히 개미 무게와 같다. 개미가 본 지구 무게와 내가 본 지구 무게가 왜 그렇게 다르냐고? 보는 주체가 다르기 때문이다. 나에게 지구 무게는 60킬로그램이고 개미에게 지구 무게는 0,1그램이다.

말도 안 된다고? 그러면 지구의 무게를 측정해 보자. 몸무게를 알고 싶으면 체중계에 올라서면 되듯이, 지구의 무게를 알고 싶으면 지구를 체중계에 올려놓으면 된다. 지구를 어떻게 체중계에 올려놓느냐고? 간단하다. 체중계를 땅에 놓으면 된다. 지구가 체중계 위에 놓인 모습이 보이지 않는가? 안 보인다고? 그러면 체중계 위에 지구 말고 무엇이 있는가? 체중계 위에 아무것도 없다고? 그 큰 지구가 안 보인다면 시력검사를 받아 보기 바란다.

지구를 올려놓은 체중계의 눈금이 얼마를 가리키고 있는가? 영(0)이라고? 맞다. 지구의 무게는 영이다. 우주 공간에서 본다면 지구는 우주 공간에 떠 있다. 무거운 것이 어떻게 두둥실 떠 있을 수 있는가? 그것은 지구가 전혀 무겁지 않기 때문이다. 우주 공간에 떠 있는 지구는 무게가 없다.

모든 상호작용에는 작용과 반작용이 있다. 지구가 나를 당기는 힘을 작용이라고 한다면 내가 지구를 당기는 힘은 반작용이다. 작용 없이 반작용이 있을 수 없고, 반작용 없이 작용이 있을 수 없다. 그리고 이 작용과 반작용은 언제나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다. 따라서 내가 지구를 당기는 힘과 지구가 나를 당기는 힘은 작용과 반작용 관계이고, 이 둘은 크기가 같고 방향이 반대이다. 이것이 지구 무게와 내 몸무게가 같은 이유이다.

권투선수가 나를 한 대 쳤다면 나는 매우 아플 것이다. 그런데 물리학에서는 이 경우, 권투선수가 나를 친 힘과 내가 권투선수를 친 힘의 크기는 같다고 말한다. 그러면 왜 나는 이렇게 아픈데 권투선수는 하나도 아파하지 않는가? 그것은, 나는 얼굴을 맞았고, 권투선수는 주먹을 맞았기 때문이다. 같은 힘이 작용해도 얼굴은 아프지만 주먹은 별로 아프지 않다. 두 신체 부위의 특성이 그렇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필자가 한 얘기에 반론을 제기하지는 못해도 무언가 속은 것 같은 기분이 드는가? 그렇다면 그것은 당신의 생각이 얼마나 고정관념에 고착되어 있는가를 보여주는 반증이라고 할 수 있다.

고정관념을 버리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내가 시를 배우면서 관념은 시의 적이라는 말을 들었는데, 관념은 시의 적일 뿐만 아니라 과학의 적이기도 하다. 관념은 우리가 사물을 있는 그대로 보는 것을 방해한다. 관념을 다른 말로 하면 생각이다. 우리의 마음속에 굳어져 있는 생각이다. 이 생각을 버려야 바르게 생각할 수 있다. 생각을 위해서 생각을 버려야 한다니 이보다 더 큰 역설이 어디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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