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식과 절식을 마치며
단식과 절식을 마치며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8.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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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모든 생명은 저마다의 먹거리를 먹고삽니다.

식물은 물과 햇빛을, 초식동물은 풀과 나뭇잎을, 육식동물은 저보다 약한 개체들을 잡아먹고 살지요.

생명체마다 자신의 먹거리를 먹으며 성장하고 존재하다가 못 먹게 되면 생을 마감하고 사라집니다.

인간도 예외가 아니라서 먹어야 삽니다. 아니 먹기 위해 삽니다. 남보다 더 많이 먹기 위해 아귀다툼도 벌입니다.

백수의 왕 사자도 배부르면 맛있는 먹잇감이 지나가도 잡지 않는데 인간들은 곡간에 가득 채워놓고도 더 먹지 못해 안달입니다.

과식하고 폭식하고 탐식하여 결국 제 몸을 망치지요.

이를 극복하고 치유하고자 일정기간 의식적으로 음식 먹지 않는 단식(斷食)을 하기도 하고, 음식을 절제하여 먹거나 간소하게 먹는 절식(節食)을 하기도 합니다.

필자도 지난 8월 3일부터 1주일간은 단식을 하고 이후 2주일간은 점심 한 끼만 먹는 절식을 했습니다.

오늘이 마지막 절식하는 날이라 그 간의 소회와 단상들을 실어 보냅니다.

불의와 폭거에 저항하고 항거하는 이타적인 단식이 아님에도 고맙게도 많은 분들이 걱정하고 성원해주셨습니다,

그 나이에 무슨 단식이냐, 왜 하필 이런 폭염에 하느냐, 무슨 불만이 있어서, 무슨 몹쓸 병이 들었길래 그러느냐며 말리는 분도 있었고, 힘이 들고 아니다 싶으면 당장 그만두라는 분에, 이왕 시작했으니 끝까지 잘하라는 분도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결행한 것은 60대 중반을 넘긴 나이라 이번에 하지 못하면 영 못할 것 같아서이고, 8월 염천에 하는 건 이때가 제일 한유해서이며, 제 몸에 붙어 있는 비곗덩어리와 아직도 제 가슴 속에 남아 있는 위선과 망상의 덩어리를 떼어내고 싶어서였습니다.

물론 까발리고 싶지 않은 몹쓸 지병도 치유하고 싶었구요.

1주 단식과 2주 절식 기간은 짧았지만 제겐 참으로 긴 여정이었습니다. 배고픔을 참는 게, 먹고 싶은 유혹을 뿌리치는 게 생각처럼 쉬운 게 아니었으니까요.

하다 보니 얼굴 살이 제일 먼저 빠지고, 그다음에 허벅지살이 빠지는데 정작 빼고 싶은 뱃살은 더디 빠져서 조바심도 나고 야속하기도 합디다.

하지만 해냈습니다. 기대만큼은 아니지만 체중도 빠졌고 몸도 많이 가벼워졌으니 그저 감사할 뿐입니다. 돈이 없어 굶주리는 조카들을 위해 빵을 훔칠 수밖에 없었던 장발장의 마음을, 맛있는 음식이 옆에 있어도 먹지 못하는 환자들의 고통을 온몸으로 느꼈습니다.

적어도 돈이 없어 굶주리는 서러운 국민이 없도록 국가와 지자체가 나서야 함을, 중병이 들어 먹지 못하는 신세가 되지 않도록 국민 개개인이 평소에 자신의 몸 관리를 잘해야 함을.

누구는 돈이 없어 오늘 먹을 떼거리를 걱정하고 있는데 누구는 너무 처먹어 팔자 좋게 저리 놀면서 단식하는구나 생각하면 단식은 사치이고 호사입니다. 고통은 당연한 거구요. 하여 부끄럽기도 하고 민망하기도 했습니다.

돌아보니 참 많이도 먹었더라고요. 하루에 커피를 10여 잔씩 마셔댔고, 세끼 밥을 배불리 먹고도 저녁이면 삼겹살에 소주에 부어라 마셔라 했으며, 또 귀가하면 습관처럼 과일을 먹고 가끔 라면도 끓여 먹었으니 위와 장이 온전할 리가 없죠.

어디 그뿐입니까. 약도 먹고, 욕도 먹고, 엿까지 먹고 살았으니 마음인들 가슴인들 좋을 리 없지요.

개가 무얼 잘 못 먹고 탈이 나면 대청마루 밑으로 들어가 다 나을 때까지 아무것도 먹지 않고 있다가 낳으면 나오더라고요.

제 모양이 바로 그 꼴이더라고요. 그래도 고마운 건 앞으로 어떻게 섭생을 하고, 어떤 운동을 하고, 어떤 자세로 살아야 할지를 감 잡았으니 은혜의 기간이었다 말하고 싶습니다. 먹는다는 것은, 먹을 수 있다는 축복입니다. 분수껏 잘 가려먹고 무병장수하기 바랍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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