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았던 `만남' 기약 없는 `이별'에 눈물바다
짧았던 `만남' 기약 없는 `이별'에 눈물바다
  • 뉴시스 기자
  • 승인 2018.08.22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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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1차 이산가족 상봉 1회차 마무리
주소·전화번호 주고 받고 술 따라주며 아쉬운 마음 달래
차창 두드리며 마지막 인사 … “오래 살아 꼭 다시 만나자”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의 한신자(99)할머니가 북측의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제21차 이산가족 상봉행사 1회차 마지막날인 22일 오후 금강산호텔에서 열린 작별상봉을 마친 남측의 한신자(99)할머니가 북측의 딸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있다. /뉴시스

 

1회차 이산가족 상봉 마지막 행사인 `작별상봉'은 기약 없는 헤어짐에 대한 슬픔으로 가득했다.

남북 이산가족은 22일 오전 10시부터 금강산호텔에서 작별상봉을 시작했다. 가족들은 2시간 동안 작별상봉을 한 뒤, 낮 12시부터 1시간 동안 공동오찬 행사에 참여할 예정이다.

이날 상봉행사는 `반갑습니다'노래가 스피커에서 크게 흘러나오는 가운데 남측 가족이 입장하면서 자연스럽게 진행됐다.

행사 진행 중간에 테이블마다 북한 들쭉술과 인풍포도술, 대동강맥주 2병이 올라오자 가족들은 서로 술을 따라주며 이별의 정을 나눴다.

아들과 만나면 “너도 술 좋아하냐”라고 묻고 싶다고 했던 이기순(91)씨는 이날 남측에서 가져온 소주를 한 병 가지고 상봉장에 왔다.

그는 물컵에 소주를 따라 아들 리강선(75)씨와 함께 나눠마셨다. 아들과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나누는 소주다. 이씨는 말문이 막히는 듯 소주만 들이켰고 말없이 탁자에 놓인 사과를 아들 앞에 밀어줬다.

이씨는 1·4 후퇴 당시 가족은 북한에 남기고 형과 둘이서 황해도 옹진군 연백에서 월남했다. 형은 월남 중 어느 섬에서 병으로 사망했다. 당시 아들 강선씨가 두 살 때였다.

북측 여동생과 만난 김병오(88)씨는 오전부터 아무 말을 하지 않고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동행한 아들 종석(55)씨가 “평생 끝이니까 아무래도 착잡하신 거 같다”고 전했다.

병오씨는 상봉장에서 여동생 순옥(81)씨와 조카 광호(38)씨를 보자마자 흐느끼기 시작했다. 여동생은 오빠의 얼굴을 쳐다보지 못했다.

순옥씨는 “오빠 울지 마. 울면 안 돼”라며 손을 지긋이 잡았지만, 병오씨는 계속 울기만 했다. 순옥씨도 침착해지려고 노력했지만 눈시울이 불거지고 입술이 떨려왔다.

김씨 남매는 10분 넘게 아무 말 하지 못하고 `하이고'하는 짧은소리만 내뱉으며 허탈한 표정으로 눈물만 흘렸다. 조카 광호씨는 어머니 순옥씨의 어깨를 쓰다듬고 위로했다.

아들 종석씨는 “아버지가 저렇게까지 우실 줄 몰랐다”며 “지금 저렇게 우시면 있다가 진짜 헤어질 때 어떠실지 걱정스럽다”고 전했다.

권석(93·여)씨의 북측 손자 리철(61)씨는 할머니 권씨가 도착하자마자 손을 붙잡고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해졌다.

권씨는 손자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한동안 손을 어루만졌다. 권씨의 남측 아들 이병준(69)씨는 “철아 울지 마”라고 달래면서 본인도 눈가에 눈물이 맺혔다.

김춘식(80)씨가 상봉장에 나타나자 북측 여동생인 춘실(77)씨와 춘녀(71)씨는 울기 시작했다. 자리에 앉은 오빠 춘식씨도 눈물을 흘렸다. 아무 대화도 없이 이들은 울었다.

춘식씨는 “오래 살아야 다시 만날 수 있어”라고 말했다.

서로 주소와 전화번호를 주고받는 가족들도 있었다. 서진호(87)씨 가족과 양경용(89)씨 가족은 서로 전화번호와 주소를 주고받았다.

양경용씨의 조카들은 “통일이 되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양씨도 웃으며 “그럴 것”이라고 대답했다.



/뉴시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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