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생활 가족사진
일상생활 가족사진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8.21 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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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물을 길어 올리던 두레박 끈이 풀렸다. 두레박은 우물 속으로 들어가 보이지 않고 끈만이 손에 쥐어진 채 참 어처구니없는 상황이다. 내둥 잘 쓰던 두레박이, 이 무슨 변고인지?

작은 호미를 끈으로 묶어 이리저리 헤집어 두레박이 걸리기만을 고대했는데 결국 걸리지 않았다. 두레박을 고정하는 쇠가 있음을 인지하고 자력이 좋은 자석을 호미에 붙여 해봐도 역시 기미가 안 보인다. 이 상황에서 어찌한단 말인가?

결국, 무모한 짓을 하기로 했다. 그래 이참에 우물청소다. 먼저 수중펌프를 구해 호스를 연결, 우물 속으로 내려 물을 올렸다. 어마한 양의 물이 품어 올려졌다. 그러던 도중 호스와 펌프의 연결점이 안 맞아 연신 중간에서 이탈해 결국 커다란 양동이로 물을 길어 올리기로 했다. 어깨와 허리는 끊어질 듯 아프고 실로 어마어마한 무게감이다.

그렇게 했는데도 두레박이 보이질 않았다. 결국, 아내와 큰아이가 위에서 물을 올리기로 하고, 나는 우물 속으로 들어갔다. 돌을 쌓아 올린 터라 조심스레 돌을 발판삼아 내려가다 젖은 돌을 잘못 디뎌 미끄러졌다. 남은 물은 무릎 정도, 발밑은 온통 고운 마사토였다. 긴 시간의 양동이가 쉴 새 없이 반복해 오르내리며 결국 바닥이 보이기 시작, 두레박은 고운 마사토에 곤두박질 되어 있었다. 이러니 걸리지 않지. 내심 기이한 일이다 싶은 마음을 두고 다시 우물청소를 했다.

그러고도 한참을 지나 단단한 암반이 드러났다. 커다란 암반 위에 돌을 쌓아 올려 만든 우물, 가장 밑에는 4개의 돌을 기초로 좀 작은 돌로 올렸다. 물과 고운 모래를 올려 깨끗해진 돌판 네 귀퉁이에서는 아지랑이 피어오르듯 물이 스며들고 있었다.

대략 10여 년만의 청소인 듯하다.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는 2년 주기로 하던 청소였는데, 수도가 놓이며 허드렛물로만 쓰던 것이어서 별달리 신경을 쓰지 않던 것인데, 이참에 제대로 전쟁을 치렀다.

폭염에 우물 속은 한기가 느껴질 정도의 온도여서 그나마 무리가 없었다. 그런데도 우물에 들어가 고여 있는 모래를 쓸어 담으면서 가슴에 먹먹함이 엄습해 들었다. 아버지 살아계실 때 정기적으로 했던 큰일이었는데, 이제 내 몫이 되었다. 웅크리고 있는 아버지의 모습이 그때 이랬을 것이다.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만들어 놓은 우물, 우물은 늘 변함없이 물을 채웠다. 도심 한가운데, 주변에 건물이 들어서도 물길은 끊이질 않고 흘러 모여 고인다.

나도 이제 그 시절의 아버지가 되는 듯하다. 이전의 아버지가 만들어놓은 터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찾고 자꾸만 떠오르는 가족의 모습을 떠올린다. 생활의 시간 속에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은 정말 대단한 분이었다는 생각이다.

집안의 우물은 청량감을 줄 만큼의 시원한 물이 계속해서 솟아 들어오니, 그것이 아버지가 나에게 주는 선물이 아닌가? 집안의 맏이로서 가장으로서 일하며, 집안을 돌보며, 세월이 흘러가며 나 역시 아버지의 아들이구나라는 생각이 날 때마다 난 내 가족이 함께하고 있음에 늘 감사함을 표현한다. 아버지의 자리를 기억하며 함께 하고 있음에 가족을 이룬다. 그래서 내 주변이, 기억이 가족사진이다.

폭염에 잔디가 타들어가고 있을 것 같아 물통을 들고 아버지 산소를 찾는다. 시원한 물을 건넨다. 아버지가 힘들지 라고 웃음을 지으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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