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희정 무죄판결과 법의 한계
안희정 무죄판결과 법의 한계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8.20 20: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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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연지민 부국장
연지민 부국장

 

안희정 전 충남지사의 무죄 선고가 여성계의 분노를 촉발시키고 있다. 이번 판결로 판사들의 성인지도가 거론되고, 청와대 홈페이지에는 40만 명이 넘는 여성들의 청원도 이어지고 있다.

지난 주말 서울 도심에서 열린 집회에 `여성에게 국가는 없다'라는 극단의 문구가 등장한 것을 보면 무죄 판결에 대한 여성들의 분노를 간접 체감할 수 있다.

특히 이번 판결은 올해 한국을 강타한 미투운동이 여전히 여성들의 목소리로만 비치는 것 아닌가 하는 우려가 법이란 현실로 드러났다는 점에서 더 절망적이다. 이는 역으로 한국사회가 그동안 얼마나 남성중심 사회로 구조화되고 움직여왔는지 보여주는 일이기도 하다.

안 전 지사의 무죄판결을 바라보는 시선은 다양하다. 남자와 여자가 바라보는 관점이 다르고, 피해자의 개인 책임론부터 제삼자의 배후설도 만만치 않게 회자하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이러한 관점 차이는 사건의 본질을 흐리기도 하고 더 많은 설을 파생시키기도 한다. 참인지 거짓인지도 모르는 이야기들이 뒤섞이다가 결국 남녀의 문제로 끝날 가능성이 농후해지는 사건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번 판결을 좀 더 냉정히 따져볼 필요가 있다. 우선 유죄를 뒤엎을 정도로 우리나라 성 관련 법이 허술하다는 점이다. 성문제에 있어 남성에게 관대했던 보수적인 전통사회의 관습이 법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이번 판결에서 안 전 지사의 행위가 상하관계의 `위계'가 아닌 힘의 `위력' 여부에 초점을 맞춰져 있는 것도 무죄의 근거가 되고 있다. 정조 관념까지 거론하고 있는 재판부의 구시대적 성인지도는 말하기조차 부끄럽다.

그런가 하면 안 전 지사의 평가도 이해할 수 없다. 재판부는 `권위적이거나 관료적이지 않은 정치인'이라며 위력 행사를 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위력의 수위 기준이 무엇인지 알 수 없지만, 피해자와의 상대적 평가가 아닐 수 없다. 성 문제는 수직적 구조나 관계에서 사건을 바라볼 때 사실에 더 접근할 수 있다는 점에서 성폭력 피해자에 대한 이해가 부족했음을 보여준다. 더구나 여성 피해자의 처신을 문제 삼는 판결은 뿌리깊은 남성 중심의 악습을 확인시켜 준 셈이다.

이례적인 재판 과정도 문제점을 드러냈다. 성폭력 사건은 대부분 비공개로 진행되지만, 이번 재판은 전 과정이 언론에 공개됐다. 또한, 한 공간에 피해자와 피의자가 가름막 하나를 두고 마주해야 하는 상황이 연출됐고, 감정 섞인 증언과 여성 피해자의 민감한 기록까지 공개돼 2차 피해를 부추겼다. 유명인사로 사회이슈임에는 분명하지만, 인권을 고려하지 않은 재판 공개는 오점이 아닐 수 없다.

여러 면에서 이번 무죄판결은 법과 한국 사회의 문제를 들춰냈다. 일각에서 판결을 두고 남성과 여성이란 이분법적 시선과 해석이 안타깝지만, 여성들의 거센 항의를 단순히 페미니즘이라고 치부할 수 없는 대목이다. 성 문제에서 이유 불문하고 여성 피해자가 더 큰 피해를 받는 한국 사회에서 또다시 법이 침묵을 강요하는 판결이기에 여성들이 수용할 수 없는 것이다.

시대가 변했다. 여성들의 사회인식도 높아졌다. 과거에 묶여 있는 법으로는 다양한 가치가 존재하는 사회를 이끌 수 없다. 한국 사회의 성문제도 다각적으로 진단해 그에 맞는 법 개정도 해야 한다. 이번 판결을 사회 변혁의 시금석으로 삼을 때 성숙한 사회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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