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
해운대
  •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 승인 2018.08.20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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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봉 교수의 한시이야기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김태봉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여름이면 현대인들이 즐겨 찾는 곳 중에 으뜸은 아마도 해수욕장일 것이다. 해수욕장 중에서도 으뜸은 아마도 해운대일 것이다. 지금은 한여름에 수백만 명의 피서객이 모여드는 곳이지만, 조선시대만 해도 이곳은 한낱 해변에 불과한 곳이었다. 인적은 없고 갈매기들만 한가로이 날아다니던 곳이었으니, 지금의 해운대는 상전벽해(桑田碧海)의 산 증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 한적한 곳을 거닐며 시를 읊조린 사람이 있었으니, 조선(朝鮮)의 시인 이안눌(李安訥)이 바로 그 사람이다. 그의 시를 통해 지금의 해운대와는 완전히 다른 해운대의 모습을 떠올려 보는 것만으로도 시원함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등해운대(登海雲臺)

石臺千尺勢凌雲(석대천척세릉운) 구름을 넘어설 듯 누대는 천척 높이고
下瞰扶桑絶點氛(하감부상절점분) 굽어보는 동녘바다 티 없이 맑구나
海色連天碧無際(해색연천벽무제) 바다와 하늘빛은 가없이 푸른데
白鷗飛去背斜曛(백구비거배사훈) 나는 갈매기 등 넘어로 노을이 불타네

해운대라는 이름은 신라 때 최치원이 이곳을 지나다가, 그 경치에 매료되어 석각을 남긴 데서 유래하였다는 설이 있지만, 확실치는 않다. 해운대는 보통의 누대처럼 사람이 만든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적으로 형성된 바닷가의 석대(石臺)이다. 멀리서 보면 누대처럼 보였을 것이고, 누대는 빼어난 풍광이 있는 곳에 자리 잡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인이 보기에 해운대는 일단 높다. 얼핏 봐도 천 척은 될 법한데, 이 높이면 웬만한 구름보다 높게 올라가 있는 것이라고 시인은 능청을 떤다. 그런데 높기만 한 것 가지고 시인의 눈이 그곳에 끌린 것은 아니었다. 그 위에서 내려다본 바다 모습이 기가 막혔던 것이다. 맑고 맑은 것이 티끌 하나 빠져 있지 않은 모습이다. 맑은 것은 맑은 것이고, 그 빛깔은 어떠한가? 한 마디로 하늘색이다. 눈부시게 푸른 하늘빛이 그대로 그곳의 바닷물 색이고, 그래서 푸른 물빛이 똑같이 푸른빛을 띤 하늘로 이어져 끝없이 펼쳐져 있었으니, 가히 장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이 푸른 바탕에 새하얀 갈매기가 날고, 붉은 노을이 걸쳐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황홀경에 빠지고 말 것이다. 시인은 한 폭의 그림처럼 해운대를 선명하고 아름답게 그려내는 솜씨를 보여주었다.

지금의 해운대는 여름이면 그야말로 인산인해(人山人海)로 사람들로 북적인다. 이런 상황에서 고즈넉한 그 옛 모습을 떠올리기란 쉽지 않겠지만, 찬찬히 옛 글에 묘사된 모습을 떠올리면서 둘러보면 차츰 그 모습이 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왁자지껄한 해수욕장에서 옛 시인이 그려 놓은 한 폭의 그림을 찾아내는 것도 해운대를 찾는 색다른 묘미일 것이다.

/서원대학교 중국어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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