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직의 위기
성직의 위기
  • 권혁두 기자
  • 승인 2018.08.19 20: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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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청논단
권혁두 국장
권혁두 국장

 

얼마 전 신문에서 서울의 한 교회를 소개한 기사를 읽었다. 동대문 쪽방촌 근처에 자리 잡은 교회였다. 싸게 임대한 업소를 개조해 교회를 만들었다니 규모도 옹색할 것이다. 신도는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이 대부분으로 100명 남짓이라고 한다. 이 정도 정보만으로도 이 교회가 왜 언론에 소개됐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성경 말씀을 충직하게 실천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교회는 홀로 사는 노인이 대부분인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매일 세끼 식사를 무료로 대접한다. 노숙인들이 샤워와 빨래를 하고 잠도 잘 수 있는 쉼터도 운영한다. 폭염이 기승을 부린 이번 여름에는 교회에 에어컨을 틀어놓고 24시간 개방하고 있다. 주민들이 언제라도 찾아와 더위를 식히도록 하기 위해서다. 지난 11일 저녁에는 동대문 근처에서 조촐한 음악회를 열었다. 더위에 지친 주민들을 위로하기 위해서였다. 뜻에 공감한 봉사단체들이 동참했다. 성악, 밴드, 피아노 공연이 이어졌고 주민들에겐 짜장면이 제공됐다.

이 교회는 `등대교회'이고 소외된 이웃 보듬기에 앞장서는 사람은 김양옥 담임목사이다. 그는 이곳 쪽방촌에 교회를 세우고 13년째 주민과 노숙인들에게 헌신하고 있다.

조계종 총무원장 설정 스님이 지난 16일 중앙종회에서 불신임안이 가결돼 탄핵됐다. 조계종 사상 가장 치욕스러운 날로 기록되지 않을까 싶다. 설정 스님은 처자식 은폐, 학력 위조, 사유재산 조성 등의 의혹을 받아왔다. 어느 한 가지만 사실로 드러나도 불법에 따라 승복을 벗어야 할 혐의들이다. 그러나 학력위조를 제외하고는 명쾌한 해명의 절차가 없었다. 용퇴하기로 한 약속도 번복됐다. 개혁적 승려단체와 신도들이 들고일어나고 일반 여론도 악화하자 종단이 탄핵이라는 최후의 처방을 내렸다.

지난 5월 방영된 문화방송 `피디수첩'에서는 설정 스님 외에도 지도자급 승려들의 상습도박과 성추행, 유흥업소 출입 등 충격적 의혹들이 여럿 폭로됐다. 700만 신도를 거느린 국내 최대 불교종단에서 벌어진 일이라고 믿기 어려웠다. 정부가 혈세로 불교에 보조하는 연간 1300억여원은 대부분 조계종에 지원된다. 제기된 의혹들을 종단 내부의 일로만 치부할 수 없다.

기독교계에서는 세습 논란이 뜨겁다. 서울 명성교회는 교인 10만에, 연간 운영재정이 1000억원에 달하는 국내에서 두 번째로 큰 개신교회이다. 최근 대한예수교장로회 통합총회 재판국이 이 교회의 목회세습을 인정해 안팎의 비판에 시달리고 있다. 재판국이 명성교회 담임목사로 인정한 김하나 목사는 정년퇴임한 김삼환 원로목사의 아들이다. 예수교장로회 통합교단 헌법은 `은퇴하는 담임목사의 직계비속 등은 담임목사로 청빙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따라서 김하나 목사의 취임은 교단헌법 위반이 된다. 그러나 재판국은 8대 7의 표결로 세습이 아니라고 판정했다.

지난 2015년 김삼환 목사 퇴임 후 명성교회는 세습설을 일축하며 새 담임목사를 찾겠다고 호언했다. 그러나 지난해 3월 외부 교회로 독립했던 김하나 목사 청빙을 강행했다. 명성교회는 세습불허 조항에서 `은퇴하는'이라는 문구를 희한하게 해석했다. 김삼환 목사는 이미 2년 전에 퇴임했으니 `은퇴하는' 목사가 아닌 `은퇴한' 목사라 법 적용 대상이 아니라는 주장이었다. 세습에 반대하는 측이 말도 안 된다며 무효소송을 제기했으나 이번에 재판국이 기각함으로써 명성교회는 세습의 적법성을 인정받았다. 그러나 “한국교회의 개혁을 갈망하는 목회자와 신학생들의 절규를 외면했다”는 비판이 쇄도하고 있다.

앞서 언급한 등대교회는 심각한 재정난을 겪고 있다고 한다. 신도마다 궁핍한 처지이다 보니 헌금이 넉넉할 리 없다. 무료급식과 노숙인 쉼터 운영에 쓰이는 예산의 70%를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충당한다. 연말이면 교회건물 임대기간이 끝나고 건물주가 퇴거를 원해 새 보금자리를 물색해야 한다. 새 건물을 구하더라도 보증금과 연월세를 감당할 형편이 안 되니 교회의 고민이 깊다고 한다.

종교계에서 세습과 자리싸움은 등대교회 같은 곳에서 벌어져야 한다. 서로가 그 고된 역할을 맡고자 치열하게 다툼을 벌일 때, 성직이 이권을 좇는다는 비판에서 벗어날 수 있다. 신자들도 종교계가 봉착한 작금의 위기적 상황에 책임은 없는지 숙고할 때가 됐다. 재정난에 허덕이는 등대교회를 고민의 출발점으로 삼으시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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