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응과 혁신
적응과 혁신
  •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 승인 2018.08.19 20:08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행복을 여는 창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김현기 여가문화연구소장·박사

 

살아있는 유기체는 생존하기 위해 `적응'이라는 생존기술을 발달시켜 왔다. 한국어 사전을 찾아보면 `적응(適應)'은 `일정한 조건이나 환경에 맞추어 잘 어울림'이라는 뜻과 `생물의 형태나 기능이 주어진 환경조건에 생활하기 쉽도록 형태적, 생리학적으로 변화하여 감'이라는 의미를 담고 있다. 즉 생명체가 생존하기 위해 주변의 환경에 잘 적응한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적응은 생명체의 매우 중요한 생존기술이 틀림없다.

사람들은 생각보다 적응을 잘한다. 연일 계속되는 폭염 때문에 처음에는 정말 견딜 수 없을 만큼 힘들다고 생각했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대로 잘 적응한다. 주말에는 맹렬한 기세의 폭염이 조금 가시니 살 것 같다고들 한다. 예년과 비교하면 이마저도 덥다고 할 온도이지만 시원하다고 한다. 더운 환경의 변화에 우리가 놀랍도록 빠르게 적응한 결과다. 적응은 자연환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 모두 적용된다. 60년대부터 시작된 불의한 정권이 그렇게 오래도록 맹위를 떨칠 수 있었던 것도 적응 때문이다. 적응하게 되면 불안감이 사라지고 스트레스가 줄고 에너지 소모가 최소화된다. 한마디로 편안해진다는 것이다. 적응은 바꿀 수 없다고 생각되는 환경에 스스로 맞추어 살아가는 생명체의 운명인 것이다.

`혁신'은 적응과는 다른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한국어 사전에서 혁신(革新)은`낡은 것은 바꾸거나 고쳐서 아주 새롭게 하는 것, 낡은 체계나 관습, 의식, 방법 따위에서 벗어나 이를 다시 새롭게 만드는 것'이라고 정의한다. 다시 말해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환경이나 신념과 가치체계 자체를 무너트리고 다시 새롭게 만드는 것이다. 즉 환경을 변화시키는 것이다. 적응이 `환경에 맞추어 사는 기술'이라면 혁신은 `환경을 변화시키는 기술'이다. 적응은 `편안함과 익숙함'을 주지만 혁신은 `불편함과 낯섦'을 준다. 그래서 많은 경우 우리는 혁신보다는 적응을 선택하기가 쉽다. 이런 선택의 결과로 `적폐와 기득권'이 강화되고 `퇴보와 안주'를 고착화 시켜주며 우리 삶은 발전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다.

벌써 한참 전의 일처럼 느껴지지만 `촛불혁명'은 사회변화를 위해 시민들이 불편함과 낯섦을 선택한 일대 혁신사건이었다. 익숙한 가치와 익숙한 사회 환경을 부수고 새로운 가치와 새로운 체계를 세우기 위해 불편함과 익숙함을 던져버린 시민들의 용기사건이었다. 그 혁신의 결과로 새로운 정부가 들어섰고 정치 환경이 바뀌고 남북의 대결구도가 평화모드로 전환되었다. `소득주도 성장, 최저임금 인상, 주 52시간 근무'등은 우리에게 불편함을 준다. 그러면 어떻게 할 것인가? 불편하고 문제가 있으면 지금처럼 해야만 하는 것인가? 두렵고 불안하면 멈춰서야 하는 것인가? 용기는 두려움을 모르는 것이 아니다. 두렵지만 한 발 앞으로 나가는 것이다. 혁신을 위해서 용기가 필요한 것이다.

우리 사회에 적응과 혁신의 대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그러면 우리 지역사회는 어떠한가? 새 시대를 열망하는 시민의 힘으로 탄생한 충북 도내 민선 7기 단체장들과 의원들은 어떤 혁신을 만들고 있는가? 익숙한 비전과 친숙한 사람들 오래된 체제로 옛것의 적응에 골몰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불편하다는 이유로 낯설다는 이유로 혁신을 피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보다 과감한 혁신이 필요하다. 낡은 프레임으로 새 시대를 만들 수 없다. 환경에 적응하지 말고 새로운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역사는 적응이 아니라 혁신을 통해 발전해 왔다. 늘 잊지 말고 기억하기를 바란다. 그대들은 능력으로 선택된 것이 아니라 혁신을 위해 선택되었다는 것을 말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