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자와 소인배
군자와 소인배
  •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 승인 2018.08.16 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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時 論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방석영 무심고전인문학회장

 

입추가 지나고 말복마저 지났다. 어느덧 아침저녁으로 선선한 바람이 불어오는 처서가 목전이다. 푹푹 찌던 2018년 여름의 폭염도 시간 저편으로 사라져, 추억 속의 한 페이지를 장식하게 될 것이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 세상 모든 만물은 극에 달하면 반드시 쇠하고 만다는 물극필반(物極必反)이란 말이 새삼 실감 난다.

꽃이 활짝 피어서 그 붉은 꽃잎이 아름답고 싱싱한 것은 아무 문제가 없다. 시들어지는 것 또한 문제가 아니다. 새로 산 자동차가 번쩍번쩍 빛을 내며 쌩쌩 달리는 것이 자연스럽듯이 오래되고 낡은 자동차가 그 빛을 잃고 덜덜 거리는 것 또한 문제될 것이 전혀 없다. 오르막이 있으면 내리막이 있고, 내리막 끝에는 평지나 오르막이 시작되는 것이 세상의 당연한 이치다.

실상이 이와 같음에도 우리는 자신이 믿고 존경하는 사람은 모르는 것도 없고 화도 내지 않을 것이란 기대감과 함께 그와 천년 만년 함께 할 것처럼 여기곤 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은 여타의 다른 사람에게는 몰라도 자신에게만큼은 감정이 상할 수 있거나 마음이 아플 수 있는 말들을 결코 하지 않을 것이란 확신마저 의식 저변에 짙게 깔고 있는 경우도 있다.

이 같은 막연한 기대심리는 자신이 좋아하고 믿고 존경하는 사람에게 지적을 받거나 비난을 받으면 그 지적과 비난을 자신의 잘못을 치유하는 양약으로 승화시키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막연한 기대감은 올바른 지적임에도 감정을 상하고 마음 아파하는 역효과를 내기 쉽다. 끝내 `사람 잘 못 봤다'는 자괴감에 휩싸이며 자신이 좋아하고, 믿고, 존경하던 사람과 원수지간으로 돌변하는 최악의 경우를 당하지 않아도 다행이다.

공자님은 “人不知而不溫(인부지이불온) 不亦君子乎(불역군자호)”,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화를 내지 않으면 군자가 아니겠는가? 라는 말씀하신 바 있다. 또 “不患人之不己知(불환인지불기지) 患不知人也(환부지인야)”, 남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것을 근심치 말고 내가 남을 알아보지 못하는 것을 근심하라고 피력하신 바 있다. 또한 “知之爲知之(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是知也(부지위부지시지야)”,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는 것이 바로 아는 것이라는 말씀도 하셨다.

서로 다른 사람들이 함께 모여 더불어 살아가는 공간이 바로 이 세상이다. 따라서 얼마든지 누군가로부터 지적받는 일을 당할 수 있다. 자신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자신의 감정을 상하게 하는 말을 듣더라도 마음의 중심을 빼앗긴 채 감정적으로 반응해선 안 된다. 그 어떤 서운함과 불쾌한 감정이 없는 가운데 타인이 자신의 어떤 점을 지적하고 비난하는지 정확하게 이해한 뒤 그 지적과 비난이 타당한지 냉정하게 살펴볼 수 있어야지만 비로소 군자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의 지적이나 비난이 타당하다면 자신의 체면이나 자존심, 손해 등과 연결 짓지 말아야 한다. 그 어떤 의미도 부여함 없이 즉시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고친 뒤 새롭게 시작하는 것이야말로 행복한 삶으로 가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아는 것은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은 모른다고 하고 옳은 것을 옳다고 하고 그른 것은 그르다고 인정하면 그뿐이다. 그렇지 않고 서운하고 억울한 감정에 휩싸인 채 온갖 이론들을 견강부회하면서 자신의 타당성을 증거하고 합리화시키는 것은 어리석은 소인배나 할 짓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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