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화의 날개
우화의 날개
  • 이재정 수필가
  • 승인 2018.08.15 19: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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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임즈 포럼
이재정 수필가
이재정 수필가

 

나와 타협을 한다. 가지가지를 쏟아내는 핑계는 달달하여 유혹에 끔뻑 넘어간다. 그렇게 운동을 안 한 지 일주일이다. 몸이 찌뿌드드하여 마음을 다잡고 음성천에 나갔다. 걷고 있는 머리 위로 잠자리가 무리 춤을 추며 지나간다. 물고기가 물속을 유영하듯 비행기 날개를 하고 날아올라 소라색 하늘에 콕콕 박힌다. 그림이 된다. 잠자리에 뺏긴 시선은 발걸음을 엉키게 해 넘어질 뻔했다.

숲에 풀잠자리가 보인다. 어려서 실잠자리라고 부르던 명주잠자리다. 나풀거리는 투명한 날개가 명주 같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작고 가녀린 몸체로 하천가에 수풀을 오간다. 이토록 고운 날개를 가진 녀석의 유충이 이름도 무시무시한 개미귀신이라고 한다. 도무지 상상이 되지 않는다.

개미귀신은 모래밭에 고깔모양의 함정을 파고 먹이를 기다린다. 한번 빠지면 절대로 헤어나지 못하는 이 구덩이를 개미지옥이라고 불린다. 이곳에 많이 걸려드는 먹잇감은 개미다. 밑바닥에서 빠져들기를 기다리고 있다가 톱날 같은 입으로 개미의 체액을 빨아먹는다. 이렇게 몸을 불려 성장하여 모래에 실을 뽑아내 고치를 만들고 여기에서 탈피한 번데기는 성충을 거쳐 몇 번의 탈바꿈으로 잠자리가 되는 것이다.

3년의 긴 시간을 소요하는 과정을 지나서야 비로소 변화된 모습으로 새로이 태어나는 삶이다. 번데기가 날개 달린 나방으로의 화려한 변신. 우화(羽化)라고 한다. 나도 이처럼 우화 하고 싶을 때가 있다. 외모는 환하게 빛나고 당당하여 유쾌한 사람이었으면 좋겠다. 붙임성이 많아서 주위에 나를 좋아해 주는 사람들이 넘쳤으면 한다. 지금의 모습에서 탈피하여 멋진 나로 바뀌고 싶다.

며칠 전, 운동하는 길에 그녀를 우연히 만났다. 상부(喪夫)한지 몇 개월 되지 않은 아픔을 위로하려고 먼저 말을 꺼냈다. 나를 건너다보는 얼굴에 흐린 미소를 짓고 있었다. 무어라 말을 잃은 둘 사이에 한참 침묵이 흘렀다. 망설이던 그녀의 입이 열렸다.

“나, 지금이 싫지 않다. 그이에게 무시당하면서 살았어. 사람취급도 안 했지. 이제 살맛이 나서 좋아. 나, 참 나쁘지” 이렇게 말을 하는 눈에 눈물이 차였다. 그녀는 분명 우화(羽化)를 꿈꾸는 듯 보였다.

주위의 누구도 이런 사실을 몰랐다. 어쩌다 본 둘의 모습은 보통의 부부였으니 속사정을 알 리가 없었다. 잉꼬는 아니어도 평범한 가정을 꾸리고 살아가는 사람들인 줄 알았다. 아이들을 잘 키워내고 경제적으로도 여유로운 화목한 가족으로만 알았기에 아무도 그녀의 불행을 눈치 채지 못한 것이다. 혼자가 된 이후에 훨씬 밝아진 그녀의 변화에 의아해했었다. 남편을 잃은 이에게 보내지는 동정이 싫어 초라하지 않기 위해 억지로 애쓰는 줄로만 알았다. 이런 아픔이 있을 줄 누가 알았겠는가. 혼자서 들키지 않고 삭였을 고통이 아픈 연민으로 온다.

그녀는 씩씩하다. 남편과 같이 하던 일을 접고 회사에 취직했다. 화사한 모습이 좋아 보이고 멋스럽다. 이제 스스로 즐길 줄 알아서 행복한 사람이 되어 있다. 자신을 잃지 않고 제 길을 찾아가고 있다. 그 사람이 구속해왔던 그물을 벗고 그녀는 탈피 중이다.

움츠렸던 어깨에 새살이 오르고 날개가 돋아나고 있다. “나는 나로 살고 싶다”는 그녀의 우화(羽化)를 가만히 지켜보기로 했다. 우아한 날갯짓의 우화등선(羽化登仙)을 기대하는 것이다.

앞으로 그 날개로 훨훨 날아오르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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