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칫국과 미역국
김칫국과 미역국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8.15 19: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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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칫국과 미역국은 된장국과 더불어 오랜 세월 한국인들이 즐겨 먹던 대표적인 국물 음식입니다. 한국인의 DNA에 깊게 배어 있는, 서민들의 애환이 서려 있는 토속음식이지요.

아시다시피 국이란 고기나 생선 채소 따위에 물을 많이 붓고 간을 맞추어 끓인 음식을 이릅니다. 뜨겁거나 시원한 국물을 좋아하는 우리의 독특한 음식문화 중 하나죠.

주식인 밥도 아니고 그렇다고 반찬도 아닌 것이 바로 국입니다. 지구 상에서 이런 음식문화를 가진 나라와 민족은 아마도 우리가 유일할 것입니다.

아무튼, 김칫국은 김치를 넣어 끓인 국이고, 미역국은 미역을 넣어 끓인 국입니다. 발효 음식인 김치와 해조류인 미역은 우리 몸에 유익한 먹거리이지요. 특히 미역국은 산모가 해산 후 산후조리를 위해 먹는, 아무리 가난해도 생일날 아침이면 자랑처럼 먹는 고마운 국입니다.

그런데 그런 국이 언제부터인가 우리 생활에 부정적인 언어로 쓰이고 있어 얄궂기 그지없습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는 속담과 `미역국 먹은 거야' `또 미역국 먹었어'란 말이 바로 그것입니다.

`떡 줄 사람은 생각도 않는데 김칫국부터 마신다'라는 속담은 남은 생각지도 않는데 혼자 착각하여 행동하는 모습을 빗대거나 빈정거리는 말인데, 실은 김치를 넣고 끓인 매큼하고 뜨거운 김칫국이 아니라 새큼하고 시원한 동치밋국을 의미합니다. 냉면이나 국수에 말아 먹으면 제격인 동치밋국이 김칫국으로 둔갑한 거죠. `미역국 먹었다'란 말은 미역의 미끈미끈 특징처럼 원하던 시험에 낙방하거나 직위에서 미끄러졌을 때 푸념조로 하는 말입니다. 실패의 대명사처럼 말이죠.

`미역국 먹다'란 말은 구한말 일제에 의해 조선 군대가 강제로 해산되었을 때 그 해산(解散)이라는 말이 아이를 낳는다 해산(解産)과 말소리가 같다는 데서 비롯되었습니다. 아이를 낳으면 미역국을 먹는 풍속에 빗대어 군대가 해산되는 바람에 군인들이 일자리를 잃어버렸음을 비꼬거나 푸념한 말이 통속어로 굳어버린 겁니다. 산모가 미역국을 먹는 건 미역이 혈액을 맑게 해주는 청혈제 역할을 할 뿐 아니라 요오드가 풍부하고 칼슘 함량이 많아 산후 자궁 수축과 지혈의 역할을 하고 부기도 빼주고 젖이 잘 나오도록 하는 성분이 있어서입니다.

또 생일날 아침에 미역국을 먹는 건 태어날 때 어머니가 처음 먹은 음식이 미역국이고, 어머니가 먹은 미역성분을 먹고 자라서 상징적으로 먹어왔던 것이 보편화된 것입니다. 아무튼 김칫굿과 미역국을 마시고 먹어 본 사람은 압니다. 김칫굿과 미역국의 공통점은 실망이고, 좌절이고 괴로움이라는 것을.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듯이 김칫국을 마시고 나면 기분이 묘해집니다. 겸연쩍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하고, 오기도 나는. 기대했던 도전에 미역국을 먹으면 실망과 자괴감이 참으로 큽니다. 백 없고 돈 없어 그리되었다고 여겨지면 분노가 하늘을 찌르지요. 사람들은 누구나 한두 번쯤은 그런 김칫국과 미역국의 쓴맛을 맛보게 되지요. 그러면서 삶의 내공이 쌓이고 깊어지더라고요.

필자의 미역국 역사는 중학교 입학시험부터였어요. 우물 안 개구리였던 것도, 세상에 나보다 더 똑똑하고 공부 잘하는 사람이 수없이 많다는 것도 그때 알았고요. 반장이 되는 줄 알고 당선소감까지 준비했는데 양조장집 아들이 반장이 되더라고요. 김칫국 마신 거죠. 어린 나이에 세상 일이 내 생각대로 되는 것이 아니라는 걸 어렴풋이 알게 되었고요.

사회에 나와선 그보다 더한 김칫국과 미역국을 수없이 먹고살았는데 돌아보니 고맙게도 모두 나를 더 단단하게 해준 스승이자 자양분이었어요. 그래서 지금은 김칫국 마시고 미역국 먹은 지난 일들을 훈장처럼 달고 다녀요. 나 이렇게 살아왔었다고, 그리하여 오늘의 내가 있다고. 그래요. 김칫국도 미역국도 잘 먹으면 축복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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