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망한 日 분위기만 보도 … 만세 환호는 없었다
패망한 日 분위기만 보도 … 만세 환호는 없었다
  • 연지민 기자
  • 승인 2018.08.13 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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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 기록으로 본 광복 그날의 모습
매일신보 15일자 日 항복·해방 언급 전무
16일 이후 광명의 날·정치범 석방 등 게재

 

조선은 36년 암흑의 일제강점기를 지나 1945년 8월 15일 해방된다. 자유를 되찾은 그날의 감격은 대한민국의 역사에 큰 물줄기를 이루며 흘러왔다. 핍박받던 국민은 조국의 국권회복 소식에 거리로 뛰쳐나왔고, 해방의 기쁨 속에 태극기를 흔들며 독립을 외쳤다.

그렇다면, 당시 신문 기록에 나타난 8·15 해방일의 모습은 어땠을까. 아쉽게도 우리말 신문으로는 단 하나밖에 없던 총독부 기관지 매일신보의 1945년 8월 15일자 보도(사진)에는 일본의 항복 기사는 한 줄도 찾아볼 수 없다.

1면에는 조선의 해방을 전하는 보도가 아니라 전쟁에 패한 일본의 입장만 다뤘다. 실제 1면 상단의 머릿기사는 `平和再建평화재건에 大詔渙發대조환발'이라는 제목의 일본 천황 詔書(조서)가 게재돼 패망한 일본의 분위기만 전하고 있다.

이 조서에는 “짐은 세계의 대세와 제국의 현 상황을 감안하여 비상조치로써 시국을 수습코자 충량한 너희 신민(臣民)에게 고한다. 짐은 제국 정부로 하여금 미·영·지·소 4개국에 그 공동선언을 수락한다는 뜻을 통고토록 하였다”라는 말로 시작하고 있어 일본의 항복 사실을 제대로 보도하지 않았다.

또한, 1면 하단에는 미·영·지·소 4개국의 `공동선언수락통고'를 실어 우회적으로 연합국의 승리를 전했고, 일본 총독 아베의 `輕擧경거를 嚴戒엄계하야 精沈着냉정침착하라'는 유고를 게재해 조선인을 통제하는 조치를 그대로 따르고 있다.

조선의 해방 소식은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있은지 하루가 지난 8월 16일 이후부터다.

조선의 독립운동가와 사상범 등 정치범 석방 소식을 전하고, 안재홍은 경성중앙방송을 통해 8월 16일 오후 3시10분부터 약 20분 동안 `호애의 정신으로 결합, 우리 광명의 날 맞자'라는 요지로 해방의 기쁨을 전했다.

매일신보는 8월 17일 자 1면에 안재홍이 방송한 내용을 `호애(互 愛)의 정신으로 결합, 우리 광명의 날 맞자, 3천만에 건국준비위원회 제1성'이란 제목으로 게재하며 해방을 기쁨을 보도했다.

이처럼 해방 당일인 8월 15일 자 신문 기록에는 “일본의 패망으로 나라가 광복을 찾았다”는 감격은 어디에도 게재되지 않았다.

/연지민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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