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브라더스
참 브라더스
  • 임성재 칼럼니스트
  • 승인 2018.08.09 19: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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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말논단
임성재 칼럼니스트
임성재 칼럼니스트

 

무더위가 기승을 부리는 올여름은 노래에 푹 빠져 있다. 우연히 뭉치게 된 네 사람의 남자가 의기투합하여 `참 브라더스'라는 남성사중창단을 만들었다. 그동안 몇 번 무대에 서기는 했지만 한 달여 앞으로 다가온 단독콘서트 공연을 위해 매주 모여 연습하는 재미로 이 무더위를 이겨내고 있다.

매주 연습 때마다 떠오르는 추억이 있다. 고등학교 1학년 봄 소풍 때였다. 반 대항 장기자랑을 하는데 우리 반에서는 기타를 치는 친구와 몇몇이서 노래를 불렀다. 그런데 즉석에서 연습한 것치고는 의외로 노래가 잘 맞는 것 같았고 반응도 좋았다. 그래서 내친김에 네 명이 보컬그룹을 만들기로 합의하고 팀 이름을 `뚝배기'라고 지었다. 촌스럽기 그지없는 팀 명인데도 고치자는 사람이 없어서 팀을 해체할 때까지 우리는 `뚝배기'였다. 두 친구는 기타를 치며 멜로디를 맡았고, 나와 다른 친구는 악기 없이 화음을 맡았다. 주로 불렀던 노래는 당시에 크게 유행하던 `하얀 손수건'이나 `목장 길 따라' 같은 포크송과 `Who'll Stop The Rain'이나 `Blowin in The Wind' 같은 팝송이었다.

이곳저곳을 다니며 노래를 부르다 보니 제법 이름이 알려져서 다른 학교 행사에도 초대를 받는 지경에 이르렀다. 크리스마스 무렵엔 500석 규모의 정식 공연장에서 열리는 한 여학교 행사에 초대받았다. 처음으로 높은 부대에 올라 객석을 바라보며 노래를 부르는 짜릿함은 정말 멋있고, 떨리는 경험이었다.

그런데 그 공연에서 우리 `뚝배기'의 운명을 바꿔줄 인물을 만나게 된다. 행사의 마지막은 초대가수의 코너였는데, 그때 출연한 가수가 폴랑카의 크레이지 러브(Crazy Love)를 `서글픈 사랑'이라는 우리말 가사로 불러서 인기를 끌고 있던 `용이와 숙이'라는 듀엣이었다. 넋이 빠져서 구경하고 있는데 나의 등을 툭 치는 사람이 있었다. `용이와 숙이'랑 같이 다니는 분 같았는데 우리를 지도를 해주겠다는 것이었다. 누군지도 잘 몰라 의아하긴 했지만 밑져야 본전이라는 생각으로 다음 날 그분의 연습실을 찾아갔다.

허름한 공간이었지만 처음 보는 신기한 타악기들로 가득 찬 연습실은 우리의 가슴을 뛰게 했다. 그분의 이름은 유복성이라고 했다. 지금은 우리나라 원로 타악기연주자로 큰 명성을 떨치고 계시지만 그때는 무명시절이었다. 우리는 유 선생님에게 `뚝배기'의 운명을 맡겼고, 유 선생님도 의욕이 넘쳤다. 기타를 못 치는 나에게는 멜로디언, 다른 한 친구에게는 봉고라는 아프리카 타악기를 안겨주었다. 그때부터 우리는 유 선생의 지도로 맹연습에 돌입했다. 전문가의 지도를 받으면서 노래가 훨씬 좋아졌고 신이 나서 연습도 더 열심히 하게 되었다.

뚝배기의 간판 레퍼토리는 김추자가 부른 `마부(馬夫)'였다. 1971년도에 발표된 곡인데, 김추자의 명성에 비해서는 잘 알려지지 않은 곡이었으나 멜로디언과 봉고, 기타가 어우러지는 반주와 화음을 넣어 부르면 꽤 근사했다. 우리는 여기저기 노래를 부르러 다니며 전성기(?)를 누리다가 2학년 겨울방학을 앞두고 가진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의 길로 들어섰다. 대학입시의 부담이 더 이상 노래를 허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우리 멤버는 뿔뿔이 흩어졌다. 그 이후로 간혹 만나기는 했어도 다시 모여 노래하는 일은 없었다. 아마 한 친구가 일찍 세상을 떠나서 그런 엄두를 내지 못하기도 했을 것이다.

참 브라더스의 연습 때마다 48년 전의 일이 바로 엊그제 일처럼 떠오른다. `노래는 부르는 사람의 마음을 먼저 움직인다. 부르는 사람이 느끼는 감동의 크기가 듣는 사람에게 그대로 전달된다. 그래서 노래는 기술이나 기교로 부르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부르는 것이다. 노래를 잘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어떤 마음으로 노래하느냐가 중요하다.' 유복성 선생님의 가르침이 곧 노래에 대한 나의 철학이 되었다.

한 달 앞으로 다가온 미혼모를 돕기 위한 `참 브라더스'의 공연준비는 마음으로 하는 준비이다. 이 무더위를 이겨내는 힘이며 다시 옛날을 꿈꾸게 하는 타임머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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