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는 타령
먹는 타령
  •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 승인 2018.08.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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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원의 목요편지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김기원 시인·편집위원

 

먹는 게 본능이라지만, 먹기 위해 산다지만 건강에 좋고 장수에 좋다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먹어치우는 한국인들.

남자들은 정력에 좋다면 뭐든 먹고, 여자들은 미용에 좋다면 뭐든 집어삼키는 참으로 식욕이 왕성한 국민입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약도 먹고, 욕도 먹고, 나이도 먹고, 더위도 먹고, 챔피언도 먹습니다. 아플 때 낳으라고 먹는 게 약이고, 뭘 잘못했거나 가치의 충돌이 있을 때 본의 아니게 먹는 게 욕입니다.

대부분 너무 많이 먹거나 해로운 음식을 먹어서 약을 먹게 되고, 욕심이 과하거나 남을 배려하지 않아 욕을 먹게 되니 약과 욕은 닮은꼴입니다. 약을 먹어 육신의 병을 고치고, 욕을 먹어 자신의 그릇됨과 부족한 마음의 병을 고치게 되니 이 또한 닮은꼴입니다.

때가 되면 절로 먹는 게 나이입니다. 어릴 땐 빨리 먹고 싶고, 늙으면 먹기 싫어지는 나이. 그러나 나이 먹는 건 공평해서 좋습니다. 남자든 여자든, 잘났건 못났건, 억만장자든 가난뱅이든, 왕후장상이든 무지렁이든 새해가 되면 누구나 똑같이 한 살 더 먹게 하니까요.

더위는 가급적 먹지 말아야 합니다. 탈이 나거나 자칫 죽을 수도 있으니 여름을 잘 나야 합니다. 챔피언은 먹고 싶다고 아무나 먹을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어느 분야든 최고의 경지에 오른 자만이 맛볼 수 있는 참으로 달콤한 먹거리입니다.

1974년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 열린 프로복싱 WBA 밴텀급 타이틀매치에서 홍수환 선수가 챔피언인 아놀드 테일러를 힘겹게 꺾고 `엄마 나 챔피언 먹었어'라고 했듯이.

인간은 누구나 꿈과 사랑과 추억을 먹고삽니다. 어릴 때는 꿈을 먹고, 젊어서는 사랑을 먹고, 늙어서는 추억을 먹는 그래서 인생은 아름답고 살만한 가치가 있는 소풍입니다. 세상에는 표를 먹고사는 정치인이 있고, 인기를 먹고사는 연예인도 있고, 자존심을 먹고사는 예술인도 있습니다.

이처럼 직업마다 소명마다 사람들의 먹거리가 다릅니다. 아무튼, 먹는다는 것은, 먹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그렇다고 아무거나 먹다간 큰코다칩니다. 먹음직스럽다고, 구미가 당긴다고 덥석 삼키다간 골로 갈 수도 있으니 잘 가려서 먹어야 합니다. 독버섯과 복어알과 뇌물을 먹으면 경을 치듯이.

특히 뇌물을 경계해야 합니다. 감옥에 가거나 패가망신하기 일쑤이니 냉혹하게 뿌리쳐야 합니다. 얼마 전 사회와 정치권에 큰 충격과 교훈을 준 노회찬 의원의 안타까운 죽음이 이를 웅변합니다. 그보다 더한 뇌물을 두꺼비 파리 삼키듯 받아먹고도 입 싹 닦고 뻔뻔하게 자리를 지키는 정치인과 정·관계에 경종을 울리고 갔기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그렇습니다. 제아무리 소화력이 좋다 해도 먹지 말아야 할 것은 결단코 먹지 말아야 합니다. 무릇 공직자는 보람을 먹고살아야 합니다. 아무리 배고파도 아니 아무리 돈이 좋고 궁하다 해도 검은돈은 결단코 먹지 말아야 합니다.

선을 먹으면 선을 낳고, 악을 먹으면 악을 낳는 게 세상 이치입니다. 제아무리 몸에 좋은 먹거리라도 많이 먹으면 배탈이 납니다. 뱃속도 곳간도 넘치면 탈이 나니 식탐과 탐욕을 버려야 합니다. 많이 먹는다 해서 일을 더 잘하는 것도 오래 사는 것도 아닙니다.

거친 음식일지라도 맛있게 먹으면 최고의 밥상이고 식사이니 분수껏 먹고 분수껏 살아야 합니다. 뭐니 뭐니 해도 인생 최고의 성찬은 보람과 감동입니다. 보람과 감동을 먹는, 먹는 것으로부터 자유로운 사람이 진정 자유인입니다.

/시인·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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