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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 승인 2018.08.08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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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세근 교수의 인문학으로 세상 읽기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정세근 충북대 철학과 교수

 

중국인들에게 돈을 줄 땐 `빨간 봉투'에 넣어주어야 한다. 세뱃돈을 주는 빨간 봉투를 `홍빠오'(홍포紅包)라고 하는데 이는 빨간색을 좋아하는 중국인들의 색감각과 통한다. 우리식으로 하얀 봉투에 넣어주다가는 부의(賻儀)로 여길 수 있으니 매우 조심해야 한다. 죽으라는 이야기처럼 느껴진다는 말이다.

몇 년 전 설날을 앞두고 만난 대만 친구에게 돈이라도 아이에게 건네주라고 하고 싶은데 빨간 봉투를 어디서 사나 초조해했는데 이게 웬걸. 지하철 편의점에서도 파는 것을 보면서 문화의 위력을 절감한 적이 있다. 한 묶음을 산 덕분에 암에 걸린 친구의 부인에게도, 신세진 친구의 어머니에게도 홍빠오를 건네주어 마음의 빚을 조금이라도 갚을 수 있었다. 홍빠오는 받는 것이 상례이기에 좋은 기회를 잡은 셈이었다.

중국에는 붉은색이 길하기 때문에 빨간 차가 많다. 공산당 때문이 아니다. 오히려 공산당 관료들은 시커먼 차를 타고 다닌다. 택시가 붉은 계열이 많은 것이 이런 까닭에서이다. 요즘은 많이 바뀌었지만 30년 전만해도 우리나라에는 검은 차가 많았지만 일본에는 하얀 차가, 중국에는 붉은 차가 많았다.

한국의 대기업이 에어컨을 팔면서 S그룹은 안 팔리고 L그룹은 잘 나갔다는 이야기가 중국에서는 파다했다. 왜? 파란색이 칙칙하다고 여기고 붉은색이 산뜻하다고 여기는 관념 때문이었다. 색깔이 미치는 파급력이 이렇게 대단했다. 중국에서만큼은 색깔을 다르게 써야 하는 고충이 있었던 것이다. 쉽게 생각하자. 중국집에만 가더라도 붉은색이 많지 않은가?

그런데 문제는 숫자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숫자는 무엇일까? 전통적인 이야기는 빼겠지만 서구화된 우리는 `럭키 세븐'을 말한다. 7이 왜 행운일까? 그것은 유대기독교적인 것으로 보인다. 7일 만에 창조가 이루어졌으니 좋다는 말이다. 그래서 요일도 7일로 되어 있다. 월화수목금토일 이렇게 7일이다. 사실 요일은 5행에 해당하는 목화토금수(木火土金水)에 해와 달 곧 일월(日月)을 넣어 만든 5+2 체계로 서양어에 접근시키고자 동양의 전통개념을 대입시켜 번역한 개념이다. 현대 한국인도 그래서 그런지 7을 좋다고 한다. 쓰리 세븐(777)이라는 상표도 곳곳에서 보인다.

중국인들은 8을 좋아한다. `돈 많이 번다'는 뜻의 `발재'(發財)의 `발'이 `팔'(八)과 발음이 비슷하여 생긴 문화다. 사실 /ba/와 /fa/이기 때문에 차이는 있지만 그래도 닮은 게 어디냐는 마음가짐이다. 그런데 고음체계에서는 더욱 닮았기에 /fat/ 또는 /bat/(일본어에서는 /hat: hatzu)이기에 예전부터 그래온 것 같다.

가격표도 이왕이면 8로 끝나는 것을 좋아하고 번호가 8888로 끝나면 그 가격이 천정부지로 올라간다. 전화번호도, 자동차번호도, 지번도 그렇다. 한편 속물근성으로 보이지만 우리나라도 이제는 `돈 많이 버세요'라는 인사를 하고 있으니 드러내는 속물이 숨기는 속물보다는 한결 난 속물 같다.

날짜가 며칠이면 무슨 상관이 있겠냐마는 날짜에 숫자를 부여하는 것 또한 우연인 것을. 그래도 우리는 그런 숫자에 매달린다. 어떤 서류에 빈칸마다 `888' 이렇게 적길래 무슨 부호인 줄 알았다. 무한표시를 세로로 하는 것처럼 보였다. 그랬더니 오늘이 201(8)년 (8)월 (8)일이었다. 888날 18시에 전현직 보직자들과 술 마실 약속이 있으니 운수가 좋은 날 같다. 8시 8분에는 꼭 건배를 해야겠다. 우리 학교, 우리 학생 돈 많이 벌라고 말이다.

/충북대 철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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