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서로운 향을 담아 불어오는 바람
상서로운 향을 담아 불어오는 바람
  •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 승인 2018.08.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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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주알 고주알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안승현 청주시문화재단 비엔날레팀장

 

이른 새벽 앞다퉈 들려오는 새소리에 선잠에 거실 창가로 잠자리를 옮긴다. 포도, 블루베리 등 각종 열매가 익을 새도 없이 쪼아대고, 수생식물이 자리를 잡을까 싶으면 바로 뽑아서 내동댕이치는 녀석들이지만 소리는 너무도 청아하다.

어느새 상사화 꽃대도 긴긴 여름잠을 새소리에 깬 듯 쑤욱 꽃 대공을 올리고 있다.

어제까지 불던 바람이 아닌, 새소리를 담아 창을 넘어들어오는 청량한 바람은 얼굴을 감싸다 이내 코끝으로 물끄러미 들어와 가슴 깊숙이 자리 잡는다. 평온한 귀잠으로 이어진다.

연이어 들어오는 상큼한 바람은 풀 냄새를 담고 있다.

서향으로 난 집, 학교운동장의 황량한 모랫바람을 막을, 도로변 행인들의 시선에서 사생활의 공간을 고려하여 커다란 감나무를 먼저 식재하고, 감나무 사이에 좀 작살나무와 남천으로 나무울타리를 쳤다. 안쪽으로는 반그늘에서 잘 자라는 수국이나 작약을 식재하고 그 안쪽으로는 야래향이나 서향을 식재하였다. 그러고도 저녁나절 따가운 빛을 차단해줄 포도나무를 거실 창가쪽으로 심고, 그 밑으로 국화나 팥배나무를 심고, 베란다 쪽에는 다육이를 배치했다.

여름 내내 지속적으로 이어지는 폭염에 모두 힘든 나날의 연속이었다.

동네 새들은 연신 날아들어 연이 심겨진 물에 번호표를 뽑지도 않고 연이어 목욕하고, 물을 마셨다. 자랄 새도 없이 새들에게 시달리는 연이 불쌍해 아예 절구통 하나는 연을 빼내고 차가운 우물을 길어 채워 줬다.

도로의 아스팔트가 달궈지고, 도심의 시멘트가 달궈진 열섬에 더위를 식혀줄 섬을 하나 마련해줬다. 불볕더위에 동네에서 보기도 어려운 모기도 피서를 왔다. 저녁나절 밖으로 나가면 한꺼번에 너무도 많이 달려들어 이놈의 인기를 실감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처음부터 서향으로 난 집, 도심의 열을 피할 수 있고도 늘 시원한 바람을 맞을 조경계획을 했던 터이라 남들보다는 덜 더위를 느낀 한여름이었다.

나무들과 화초류를 적절히 배치했던 게 가장 큰 효과를 가진 듯하다.

단감, 개봉, 땡감 나무 등 교목을 기본으로 배치하고 그 밑으로 목단, 철쭉, 헤이즐넛, 천리향, 야래향 등 관목을 그리고 주변으로 새덤, 사초, 칸나 등 다년초부터 일년초까지 고루 분포하여 심었던 게, 한나절 열을 식혀주고 저녁부터 새벽까지 풀벌레 소리가 들리게끔 해주고, 가끔은 청개구리가 뛰놀던 곳이 되었다. 밤이면 야래향이 피어 거실 창문을 통해 향이 들어오는 황홀함을 경험한다. 봄에는 서향, 여름에는 야래향, 가을에는 국화다.

그래서 하늬바람은 새소리를 담아 창을 넘어 들어오는 청량함이었고, 나무와 풀숲 사이로 불어오는, 풀내음을 담은 상큼한 바람이고, 지금은 풀벌레 소리를 담은 선선한 바람이다.

주어진 환경의 불리함을 이겨내는 방안이었다. 도심의 내리쬐는 햇살과 학교운동장에서 달궈진 모랫바람이 주변의 환경, 이를 이겨내는 것은 녹색이었다. 그리고 배치였다. 각각의 역할과 특성을 파악하고 배치한 것이 다였다. 지금도 고민의 연속이다. 어떻게 하면 손마디가 시릴 정도의 우물을 퍼 올려 시원하게 돌릴 방법은 없는지에 대한 고민도 그중 한 가지. 조금 더 한 고민의 끝에 좀 더 편안한 여름을 지냈다.

억지로 되는 것은 없다. 제대로 파악하고 배치하고 스스로 자율적으로 움직일 수 있게끔 하는 세팅이 중요하다. 그리고 지속적 관심과 기다림의 배려가 필요하다. 결과는 늘 좋은 향을 담아 불어오는 바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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