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세라트의 검은 성모
몬세라트의 검은 성모
  •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 승인 2018.08.07 2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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生의 한가운데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박윤희 한국교통대 한국어강사

 

여행의 설렘도 잠시 빠듯한 일정으로 시간은 정신없이 흘러갔다. 7박 8일간의 스페인 여행이 끝나간다. 아쉬움을 뒤로하고 마지막 코스인 바르셀로나의 몬세라트산에 올라갔다. 몬세라트산에서 내려다보이는 광경은 어마어마했다.

여행 오기 전에 힘든 일들이 많았다. 그래서 여행을 통해 힐링하고 싶었다. 다행히 여행이 끝나기 전 내면에 잠재해 있던 답답한 마음이 뻥 뚫리는 것 같았다. 몬세라트 수녀원에서 전해 들은 검은 성모상에 얽힌 이야기가 내 마음을 움직이는 하나의 계기가 되었다.

몬세라트 수녀원에는 유명한 검은 성모상이 있다. 그 검은 성모상을 보기 위해 카톨릭 신자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관광객이 몰려온다고 한다. 검은 성모상이 유명한 이유 중 하나는 검은 성모상 앞에서 기도하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많은 관광객이 검은 성모상 앞에 줄을 서 있었다. 우리 일행도 소원을 빌기 위해 줄을 섰다. 한 사람씩 기도하니 시간이 꽤 걸린다. 기다리는 사람이 많았지만 참고 기다렸다. 가이드가 여러 가지 소원을 빌면 이루어지지 않으니 꼭 한 가지 소원만 말하라고 했다. 순간 나는 무슨 소원을 빌까 고민이 되었다. 많은 소원 중 한 가지를 정하는 일은 쉽지 않았다.

살면서 돈 때문에 힘든 적이 많았기에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막상 결정하려니 아이들의 장래, 사업, 건강 등등 욕심이 많이 생겨 머리가 복잡해졌다. 그 순간 무엇을 원하는지도 모르는 나 자신을 발견했다.

그렇다. 난 그동안 어떤 소원을 마음에 품고 살았는지 모르겠다. 그저 정신없이 앞만 바라보며 사느라 내가 원하는 것이 뭔지도 모르고 살았다. 나는 많은 것을 원했지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도 구체적으로 정하지 않고 구하기만 했던 것 같다. 한 가지 소원을 선택해야 하는 상황에서 결정하지 못하는 내 모습을 발견하게 되었다.

검은 성모상이 점점 가까워지자 마음은 더 조급해졌다. 내 차례가 되어서도 나는 소원을 결정하지 못했다. 그 순간 소원이 이루어질지 말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검은 성모상 앞에 멈춰 서서 눈을 감았다. 주마등처럼 스쳐 가는 말 중 `행복'이라는 단어가 떠올랐다. 그렇다. 소원이 이루어진다고 해도 불행하다고 생각하면 아무 소용이 없게 된다는 것을 깨닫고 마음속에 행복한 마음을 갖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벌써 내 소원이 이루어질 것 같아 가슴이 벅차올랐다. 무슨 소원을 빌었느냐는 친구의 말에 나는 미소만 지었다. 푸니쿨라를 타고 몬세라트산을 내려오면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이 모든 것이 마음먹기에 달려있었는데 그 마음먹기에 너무 오랜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힘들게 느껴졌던 많은 것을 몬세라트산에 내려놓고 행복한 마음만 가지고 내려왔다. 이번 여행은 그 어느 때보다 값진 여행으로 오래도록 남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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